주남저수지 갔다 왔습니다. 가는 길은 [부산 사상터미널-구포대교-김해-진영-창원동읍-주남저수지]
질풍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곧장 간다면 자전거로 세시간 안으로는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해지는 짐승들과 정돈되지 않은 갓길만 조심하면 어렵지 않게 주남과 조우할 수 있습니다.
구포대교를 지나 부산을 막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김해교(金海橋)입니다.
그 위로 조성된 조형물이 볼만해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이 아래로 허황후를 실은 아유타국의 배가 지나가지 않았을까요?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김해의 내지(內地)까지 그 옛날에는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거리감으로도 머나먼 인도인데, 그 예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실은 배가 먼길을 떠나 가야땅에 당도하여
수로왕과 혼인을 하게 되는 역사는 온몸에 전율을 일으킵니다.
어쨌든 이 역사적인 혼인으로 인하여 향후 김해김씨와 김해허씨는 결혼불가입니다.
동성동본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같은 할머니 같은 할아버지 핏줄이니...
현대화된 김해에서 가야고토(加耶古土)의 흙냄새를 그리워한다면 남우새스러울 일이지만, 그래도 삼년전의 김해는
나중에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자전거점을 차려놓고 늙어가고 싶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공사중인 부산김해간경전철이 도시를 관통하게 되면서 현대화되었지만 차분하던 옛느낌마저도 사라져버렸네요.
하늘에 느닷없이 큰 선이 그어지고 그늘이 생기니 예전에 자전거점 자리를 찾아헤매던 그 때의 김해가 맞나 싶었습니다.
자전거를 탄 찮은씨,괜히 애정이 식은 김해를 최단 시간에 빠져나와 진영으로 향해 가는데, 인현마을 즈음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수입소 때문인지 휑한 우시장 옆.
얼기설기 조성된 싸움터에 소싸움이 한창이었습니다.
주남저수지의 철새를 보러가겠다던 애초의 계획은 뒷전이고 자전거 핸들을 급하게 꺽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판 싸움을 벌이는 광경이 우리 소싸움 말고 또 있겠나 싶습니다.
우주(牛主)들이 싸우는 소 옆에서 고래고래 부추기는 추임새가 들을만합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일단 보시죠.
육중한 체구가 힘으로 격돌하니 울타리가 뻐개지는 소리가 우지끈, 하고 납니다.
곧 있을 청도 소싸움대회에서도 이 소들이 출전했으면 합니다.
생김새를 보아두었으니 올 해 대회에서 만나면 응원을...
우주(牛主)들은 소리로 싸움을 독려하기도 하지만 손에든 채로 소의 엉덩이를 두들겨 같은 효과를 노립니다.
소리는 요란한데, 소를 아프게 하는 채찍은 아니었습니다.
승부는 싸움을 포기하고 상대방 소에게 뒤를 보이면 지는 것입니다.
빨간 모자를 쓰신 분의 소가 오늘의 패자입니다.
그런데 그 전까지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사기를 북돋우고 채를 휘둘러 소를 채근하던 주인은
승부가 갈리는 순간 미련없이 잠잠해집니다.
오히려 패한 사람이나 주변의 구경꾼들이 승리한 소를 동시에 칭찬합니다.
[야... 그 소 참 잘하네 생긴 것도 우째 이리 잘생겼노.]
하고 말하면 승리한 소의 주인은 화들짝, 하며 손사레를 칩니다.
[무신 소리 하노 오늘 운이 좋은기제. 거기 소에 비하모 내 소는 소도 아인기라.]
쓰라린 패배와 달콤한 승리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와 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싸움소의 몸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기저기 뿔에 다친 상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싸움의 본고장인 청도대회가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육중한 체구가 부딪히는 순간과 소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주인들의 용쓰는 아우성.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최고의 볼거리입니다.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려고 속도를 내었습니다.
람사르 총회 때문인지 주남저수지는 꽤 정돈된 분위기였습니다.
새를 관찰하기 좋게 군데군데 망원경도 설치되어있고 찾아 들른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식상한 감이 있는 비토군 사진은 일찌감치...
하늘을 뒤덮은 오리떼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철새들이 갈대가 누운 방향, 바람이 끝나는 그곳으로 흘러간 뒤였습니다.
벤치에 앉았습니다.
철새들을 인도한 바람은 아직 남았습니다.
삶은 계란을 까먹으며 내가 상처 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내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
하나의 별이 되고 싶었는데...
잡생각은 걷어치우고 카메라를 들고 막샷을 날립니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인데, 사진 중에 두루미 한 마리가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시길...
부산에서 주남저수지를 찾아가자면 노무현 전대통령의 봉하마을을 들를 수도 있습니다.
주남에 다다르면 근처 다호리 고분군을 찾아갈 수도 있고요.
봉하마을은 너무 근자의 역사라 마음이 끌리지 않고, 다호리 고분군의 역사적 의미는 엄중하나 너무 오래된 고대사라
발길이 미적미적하였습니다. 기원전 1세기의 고분에서 철기와 붓이 출토되었습니다.
철기를 사용하였다고 하는 것은 당대 최고의 기술을 향유하였다는 것이고, 붓의 용도는 통상 문자를 쓰기 위함인데
아직까지는 붓의 용도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가야 땅의 역사는 유구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경작지인 구릉인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물의 수탈과 도굴꾼들로 몸살을 앓았다고 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어릴 때 밭을 갈다보면 예사로 항아리 파편이 농기구에 걸렸다고 하니...
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 다호리 근처 농가에 그가 기억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유물(?)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육칠십년대의 방앗간 자리를 파괴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두었더군요.
찮은씨는 경북의 면단위보다 더 작은 어느마을에 지상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극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도 알고 있습니다.
오년전쯤 자전거로 들쑤시고 다니다가 극장이었음을 표시하는 희미한 간판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두색 페인트로 단장된 너무나 작아서 요즘 노래방 정도 규모의 극장이 육칠십년대에
실존했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뭐, 이놈의 하찮은 글질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어 찍은 사진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