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호와 전도연의 모습이 떠오르는 도시.
자전거점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오다가 요즘 주말에는 아침에 눈뜨면 생각나는 곳으로 훌쩍
떠나봅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중소도시가 던져주는 느낌은 빛이 바래간다는 것.
삼년 만에 다시 찾은 우동집은 그 사이 종업원 할머니가 바뀌셨네요.
이 우동집은 음식을 만드시는 분도 할머니이신데, 탁자를 훔치고 음식 그릇을 서빙하는 허드렛일의 종업원은
더 나이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이 일대가 이런 우동집이 서너개는 되었거든. 그 때는 중핵교 애들이 많아서 학교 마치는 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지.
요새는 학생 수도 많이 줄었고, 우동 말고 맛있는 거 천지고 입맛이 변해뿌맀는지 장사가 예전 같지는 않지...]
이 집 우동의 비밀은 면 위에 뿌려져 있는 고명에 있습니다.
이곳 저곳 이런 저런 우동을 먹어봤지만, 튀김이 끈적이지 않고 잘 바스러지며 단맛이 나는 튀김 고명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었습니다.
잠시 앉아 있어도 우동집과 관련된 사연은 쉽게 훔쳐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첫애 가졌을 때, 이 집 우동이 그렇게 먹고 싶은 거라. 밤 늦게 신랑 보채서 와가지고 할머니한테 사정사정해서
한그릇 먹고 갔다니까. 우리 중학교 때 얼마나 많이 드나들었노. 예전에는 단무지는 그냥 무한리필이었지. 큰 통에
수북히 단무지가 쌓여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허기를 재우고 모퉁이를 도는데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눈길을 잡아끄는 광경이 포착됩니다.
삼년 전에는 없던 자전거점이 생겨서 살펴보았더니, 예전 그냥 자전거 타는 사람일 때 안면이 있던 사장님께서
가게를 이전한 것이었습니다.
아는척을 하니 용케 알아보시는 사장님.
[내가 자전거를 일본사람에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내가 상당히 성격이 예민하거든... 우리 아들은 엠티비 선수라.
갸가 조금 있으면 이 근처에 엠티비 전문 삽을 낼끼라. 그래가꼬 동네는 쪼맨하지만 이 바닥 자전거계를 확 쓸어뿔끼라.]
사장님의 이 사설은 삼년 전이나 지금이나 토시 하나 변함이 없네요.
삼년 전에는 서너평도 안되는 작은 가게에 공구들이 세수대야에 담겨 있었는데, 과연 자전거계를 확 쓸어버릴
태세이십니다.
이곳은 우동집도 자전거점도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 투성이입니다.
세련된 맛은 없어도 너무나 완벽한 기능의 휠 투루잉 스탠드, 손때 절은 공구, 그리고 전적으로 사장님의
설명에만 의지해 지갑을 여는 덜 약아서 어수룩해 보이는 손님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지류에 서서 중얼거려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일급수의 여울목에서 발생하는 물흐르는 소리와 비린내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능력도 있나봅니다.
거기다가 옆에 소나무 숲이라도 있을라치면...
문득 성공한 삶이란 자신의 태를 묻은 곳에서 자신의 아이가 자신이 먹었던 우동을 먹고 자전거를 타고 자신이
소풍 다녔던 송림에서 추억을 쌓고 그런 모습을 무탈하게 지켜보며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후였습니다.
잡생각이 많은 요즘이죠.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