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다빛깔과 정착한 자들
자전거는 애월항을 지나 한림 방향으로 나아갔다. 제주의 바다는 의외로 갈매기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한림 가는 길에 갈매기들이
떼로 모여있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새들인데, 가까이서 지켜본 모습은 제법 공포스럽다. 조류는 소화기관이 부실해서 배설물이
참 못봐줄 정도로 흉칙하고 냄새가 심하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연양갱을 먹었다.
풍어를 바라는 깃발이 작은배를 화려하게 꾸며주고 있었다. 방파제 너머 비양도의 모습이 보인다. 부산의 바다에 익숙한 표류자도
이 바다의 빛깔 앞에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요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육지에서 제주 이민을 감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다.
바쁜 일이 없어 천천히 자전거로 이동하다보니 이민자들의 보금자리가 쉽게 눈에 띄었다.
제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숙박업인 무슨 센터와 무슨 스토리... 그들 바로 옆에 또 다른 이민자들이 비슷한 종류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해서 제주는 공사가 그칠 날이 없다. 저들은 제주까지 와서도 그렇게 경쟁하다가 도퇴되면 소리소문 없이 제주를
떠날 것이다.
나도 이렇게 제주를 표류하다가 정착할 곳이 생겼으면 좋겠는데, 하는 헛된 꿈이 머리에서 스믈스믈 일어난다.
당장은 이 아름다운 바다 빛깔을 내내 보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저들의 생활이 부러운 것만은 사실이다.
작가 한창훈은 그의 책 [향연]에서 수평선의 침묵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섬에 정착할 수 없다고 했다.
오늘도 내일도 침묵만 유지하고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고독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멜 일행 몇몇은 배를 훔쳐 탈출을 감행하다
붙잡히게 된다. 그들은 태형에 처해져서 오래 앓았다 한다.
어쨌든 제주에 정착한 이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은 미리 일년정도 살아보라는 것과 이년 삼년 지나면 육지에서 괴롭혔던
생활의 문제가 제주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표류자는 일단 제주의 좋은 점만 눈에 넣고 흘러갈 것이다. 금능과 협재의 바다빛깔과 맞은편 비양도의 모습은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6. 선인장과 풍차
제주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풍경과 만났다. 월령리 손바닥 선인장 군락과 풍력 발전기였다. 멕시코 원산의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열대지방에서 제주의 월령리 바닷가까지 흘러들어와 자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는 이 선인장을 약으로 쓰기도 하고 열매로 막걸리를
만들기도 한다.
대규모 선인장 군락지 너머로 풍차가 돌았다.
이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니 내가 고향 아닌 객지에 와있음을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화석연료를 태워서 발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심 반가웠지만, 그래도 한가지 단점이 느껴졌다. 발전기 날개가 회전할 때 소음이
만만치 않더라는 것이다.
흔하디 흔한 것에서 제주는 소중한 것을 추출하고 있었다.
반갑고 고마웠다.
자전거 표류 팁
- 협재와 금능의 해변은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보자.
- 해안도로와 일주도로변에는 커피를 마실 만한 곳은 많은데 식사를 할 만한 곳은 마땅찮다. 미리 든든히 먹고 흘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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