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류의 시작
나는 어느날 문득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가지? 어디로 떠나볼까? 오래 고민을 해도
쉽게 정처를 정하지 못했다. 이유는 이곳 자전거점 반경 오 킬로미터 주변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 보낸
시간이 근 7년여.
나는 나의 이 게으름에 더 참아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작정 옷가지를 챙기고 지갑을 챙기고 자전거에 바람을 넣었다. 여행이나
관광이 아닌 어디론가 떠밀려서 흘러가는 표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자전거점 셔터를 내리고 자전거에 올라 첫 페달을 밟으면
서였다.
그래, 아무 설레임 없이 제주행 코지아일랜드호를 타자. 그리고 그 섬에서 표류하자. 인생이 의지나 계획과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흘러왔듯이
그렇게.
부산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삼월이지만 바람이 차가웠다. 일곱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여섯시까지 열한시간이라는 시간은 통상의
여행자들이 견디기 힘든 긴 시간이다. 잠시 졸다가 정신을 차리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에 비하면 느리디 느린 운송수단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리적인 시간이 빠른 것 뿐이다. 나는 이미 이 표류를 떠나는 데에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가.
떠나지 않으면 결국 늦은 것이다.
대형트럭들이 드나드는 화물적재함 한켠 구석진 곳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나는 긴 항해시간을 대비해 준비한 몇가지 준비물을 들고
객실로 향했다. 선실 난간에 서서 바라보는 부산의 풍경이 이제 남일 같아 보였다.
기름냄새 진동하는 이 배를 처음 탔을 때의 글이 떠올랐다. 나는 그 예전 아래와 같이 썼다.
[코지 아일랜드]
제주로 가는 배의 이름은 코지 아일랜드. 화물을 실은 대형트럭을 통째로 삼켜도 햇지 내부가 널널한 대규모 선박 구조물에 나와
자전거가 함께 한다. 평일의 연안여객터미널엔 이 빠르고 빠른 세상에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가진 이들이 넘쳐나고 그들과 함께 가는
뱃길이 쓸쓸하지만은 않다.
뱃길로 꼬박 11시간.
가볍게 떨리는 진동에서 해방되는 데에 걸린 시간이다. 선실 한켠에 다정한 어린 연인은 밤새 부둥켜안고 꼼짝하지 않더니 새벽 여명이
사위를 희미하게 밝히자 부스스 일어난다. 갑자기 이 덩치 큰 배가 굉장한 로망으로 다가온다. 사이가 소원한 이땅의 모든 남녀는 같이
부산발 제주까지의 코지 아일랜드를 탈지어다!
복음은 원래 이렇게 단순한 것...
이날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 뱃고동소리가 울리고 여객선의 기관이 본격적인 기동을 시작했다. 위잉, 하는 연속음에 이어 마치 거대한 쇠붙이가 맞부딪히는 것 같은
굉음이 나더니 선미부분의 바다가 스크류의 회전에 따라 소용돌이 치기 시작했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코지 아일랜드의 행보는 매우
신중하였다.
배는 후진을 하여 항구를 벗어나더니 이윽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큰배의 움직임은 마치 교향곡을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코지 아일랜드의 음악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템포를 서서히 높혔다. 항구의 불빛이, 부산의 시가지가 그렇게 음악이 되어 흘러갔다.
이제 확연히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생긴 것이다. 나는 바다 위에 있고 이곳 이외엔 섬과 육지가 있을 뿐이었다. 육지에 남겨둔 미해결의
문제들이 나에게 달겨들었지만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육지의 불빛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바다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선수부분에서 배가 바다를 가르며 일어난
물보라가 카메라 렌즈를 오염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채.
표류의 시작이었다.
2. 긴 항해, 배에서 만난 사람들
이불이나 깔자리가 필요없을 정도로 따듯한 객실에 들어가 몸을 기댔다. 얼핏 눈길을 돌려 살피니 장년의 부부와 청년 남자 셋이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었다. 나이 드신 양반들은 일찌감치 자리 보전하고 초저녁 잠에 빠져들기 바빴고 청년 남자 하나는
환타지(?) 소설을 읽고 있었고 나머지 둘은 스마트 폰과 태블릿PC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객실용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에 의해 일본에 끌려갔다가
천주교 세례를 받고 선교하다가 화형에 처해져 순교한 조선인 빈센트 권에 관한 내용이 흐르고 있었다.
1784년 세례를 받은 이승훈 베드로 보다 이백년 앞서 세례를 받고 끔찍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은 예수회소속 조선인 수사 빈센트 권의
서사는 나를 꼼짝 못하게 하였다. 그는 나가사키 니시자카 언덕에서 화형 당했다. 지금 알아보니 화형도 그냥 화형이 아니라 장작불에
천천히 그을려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이 극심한 처형이었다.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 한 형벌이었고 불에 태워 그들이 믿는
육신의 부활마저 차단하려는 의도로 그리한 것일 터였다.
나가사키...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하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를 향해 항해하다가 그 해 8월 16일 제주에 표류한 자다.
그래! 그가 처음 떠밀려온 제주의 그곳까지가 내일 흘러갈 예정지다.
그리고 나가사키...
불경스럽게도 나는 짬뽕이 떠올랐다.
신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잠에 빠져있었다. 배에서의 시간은 길고 이런 초저녁에 잠에 들면 새벽에 깨어 무료함으로
고생하게 되어 있다. 나는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 대비한 준비물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준비물은 김밥과 막걸리 한 병.
그나마 냄새가 덜한 김밥을 안주삼아 막걸리 병을 땄다.
내용물이 부실하고 싸구려 기름이 발린 김밥은 막걸리 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두 모금 마셨을까? 갑자기 키작은 장년의 어르신이
벌떡 일어섰다.
- 나도 술이 있는데 같이 마십시다.
제일 끝자리 아내분이 뒤따라 일어나면서 거들었다.
- 나는 배타면 모두 일찍 자야되는 줄 알았는데 이래 술 한잔 해도 되네요. 심심해서 죽을 뻔했네. 나도 같이 마셔요.
코지 아일랜드 3등실 A의 술판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사람 한사람 입을 열었다.
- 저는 일하러 제주에 갑니다.
- 저는 군인인데 휴가 끝나고 복귀하는 길입니다.
- 저는 그냥 여행이요.
- 저는 표류중입니다.
- 머시라? 표류? 그건 또 무신 말이고? 처음 막걸리 꺼내서 병나발 불 때부터 요상하다 생각했는데 말도 요상하게 하네. 나는 원래 제주
사람이여. 이번에 가는 거는 아버지 산소에 길 내러 가는 거여. 요즘 아이들이 차가 안들어가는 곳이면 잘 움직이려고 들질 않잖아. 내가 죽고
나면 내 밑에 애기들이 성묘도 안갈 것 같아서 즈그들 다니기 좋게 길 닦는 공사하러 가는 참이여.
산자가 죽은자를 위하는 마음이 이와 같았다.
제각각의 목적으로 섬을 찾는 이들이 소박하게 시작한 술자리는 오래 계속되었고 3등실 A는 몹시 취했다. 술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부터
하나 둘 몸을 누이더니 긴 침묵이 객실에 가득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내방송은 곧 제주항에 도착하니 승객들은 준비를 서둘러 달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전날 맺은 인연들과 하나 하나 눈인사를 나누고 나는 혼자 화물칸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전거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자전거에 이것저것
부착하고 나오니 그 많던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습자지가 물을 빨아들이 듯이 사람들은 섬의 이곳저곳으로 퍼져간 뒤였다.
제주 연안여객 터미널을 빠져 나오자 워싱턴 야자수가 나를 반겼다. 제주에 도착한 거였다.
나는 자전거를 국도 1132의 오른쪽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렸다.
자전거 표류 팁
- 제주행 배편은 많다. 인천, 목포, 부산, 완도, 녹동... 배가 불편한 사람은 비행기로도 가능하다. 김포와 김해 공항엔 자전거 포장을 대행하는 곳이 있다.
- 부산에서 떠나는 사람이면 배가 항구에서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의 과정과 풍경을 놓치지 말것.
- 배에서 먹을 음식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제주표류3]바다빛깔과 정착한 자들 (0) | 2012.03.19 |
---|---|
[제주표류2]시계 반대 방향 (0) | 2012.03.18 |
겨울바다, 다대포 (0) | 2012.02.26 |
풍경이 어서오라는 곳, 황령산 (0) | 2012.02.19 |
용두산 공원, 추억을 끌어내는 힘 (0) | 2012.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