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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표류5]서귀포에서의 첫날 그리고 스마트한 방식

자전거 탄 풍경

by 자전거여행자 2012. 3. 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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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귀포에서의 첫날 그리고 스마트한 방식


나는 자전거전국일주여행자와 동행을 하는 한 최대한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표류하는 자가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나 

싶어서였다. 몇시간 동행을 하면서 그에게서 한가지 일관된 방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스마트폰에 의지

하고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길을 찾을 때도 여관을 잡을 때도 저녁을 먹을 식당을 찾을 때도 늘 스마트폰을 켜서 확인에 확인, 후기까지 섭렵하고 마지막

별점까지 체크하고 난 다음에야 결정을 내렸다.


우리는 그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야 여관에 겨우 짐을 풀어놓고 나와서 고기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돼지국밥에 국수를

말아놓은 듯한 고기국수를 우물거리며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눴다.


- 전국일주 여행자님, 오늘 잠시나마 같이 자전거 타보니 마치 완주가 목표인 사람처럼 달리시더군요. 이렇게 돌고나면 나중엔 

그냥 완주했다는 기억 말고는 아무런 추억이 없으니 여유를 가지고 여행을 왔다는 마음가짐을 잊어먹지 말았으면 해요. 언제든 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제주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같이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는 침대를 썼고 나는 바닥에 모로 누웠다. 첫날 서귀포까지 와버렸다니...


나는 육지의 일을 생각하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꾸리면서 전국일주여행자가 먼저 말했다.


- 오늘은 좀 천천히 다녔으면 해요. 먼저 천지연 폭포부터 들러요. 어제 검색해보니 거기는 꼭 가보라는 군요.


여관을 나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인사를 했다.


- 갑서예...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일단 스마트폰을 켜서 길을 찾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은 삼거리와 사거리가 동시에

겹치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프로그램이 늘 사람의 시선과 같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의 꽁무니를 따라 입구를 찾지 못하고 천지연 주변만 두세번 뱅글뱅글 돌았다.


나도 길치이지만 오래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니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감각은 발달된 편이다. 그래서 네비게이션에 의지한

그의 방향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대세인 스마트폰을 거역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같은 곳을 계속 돌다가 엉뚱한 산책로로 걸어들어가자는 그의 의견을 무시하고 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길을 찾았다. 방법은 간단

했다. 지나가는 서귀포 시민에게 물었다.


- 저, 천지연 폭포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나요?


- 이길로 잠시 내려가다가 첫번째 오른쪽으로 주욱 가세요.


무조건 최첨단의 방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사람과 있을 때는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자.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까지 

스마트폰과 소통하고 있을 거면 만남의 의미가 없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뱅글뱅글 도느라 화가 이중섭의 발자취가 

깃든 길을 느끼지 못해 내심 아쉬웠지만, 그래도 천지연이 충분한 보상을 해주었다.


물론 천지연을 벗어남과 동시에 전국일주여행자는 스마트폰을 켰고 다시 길을 잘못들었다. 대신 내가 감각에 의지해 앞장서 큰길로

그를 인도했다. 


하멜의 상선은 1653년 나침반과 별의 위치, 달의 위치, 해의 위치에 의지해 자카르타에서 출발해 지금의 대만을 거쳐 나가사키까지

항해하다가 폭풍우를 만나 제주에 표류했다.








10. 동백꽃


제주에서 동백꽃을 볼 때마다 제대로 카메라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썩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동백꽃의 꽃말은 자랑, 겸손한 마음...

뚝, 뚝, 자결하듯 떨어진 꽃봉우리를 보고 있자니 꽃말을 수정했으면 싶었다.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되겠어요.


혼자 생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 동백꽃을 툭, 집어던지면서 고백했으면 썩 괜찮겠다 싶다.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되겠어요.


나와 전국일주여행자는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주며 깔깔거렸다. 아침의 산책은 서귀항 근처 새섬까지 이어졌고 우리는 다시 표선을

향해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주말의 제주였다.
















자전거 표류 팁


- 모르는 게 있으면 현지인에게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칠십퍼센트 이상은 친절하게 답해주신다.


- 자전거로 여행할 때는 특히 마음이 급해지기 쉽다. 되도록 이정표에 집중하여 볼거리를 놓치지 말자


- 일주도로를 달리다보면 해안도로로 빠지는 이정표가 늘 있다. 서귀포쪽은 해안도로가 좀 없는 편이다. 해안도로가 비교적 평지이고

차가 적어서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조금 낫다. 바닷가 풍경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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