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제주 민속촌, 대장금의 나라
우여곡절이 많은 점심을 먹은 표류자와 전국일주여행자는 소화도 시킬겸 가까운 곳의 제주 민속촌을 찾았다. 입장료가 조금 비싼 편이어서
잠시 망설였는데, 전국일주여행자는 대장금 촬영지라는 안내판을 보고 무조건 고고싱(?)을 외쳤다.
제주만큼 한류를 실감할 수 있는 곳도 드물 것 같다. 도처에 널린 대장금의 촬영지마다 이영애씨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얼굴부분만
동그랗게 파놓아 사진촬영장소를 제공하는 곳도 많았다. 여기저기 중국어나 일본어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곳도 이런 드라마 촬영지이다.
우리나라 드라마, 특히 이런 사극류는 중동지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곰곰 생각해보니 차도르를 두르고 눈만 내놓은
그들의 문화와 조선시대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우리나라 옛여성의 복식이 유사한 부분이 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살아나간 여성의
이야기라서 그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꼭 좋게만 볼 수는 없다. 이슬람 문화권에서 벌어지는 여성인권에 대한 상황은 거의 탄압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 국내에서 경험하게 되는 이슬람 문화권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여성을 보호하려고 이슬람 전통을
중시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무색케 할 만큼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희롱과 폭력에 가까운 행동을 서스럼 없이 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 대장금은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만 몸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예전이지만 조선도 그러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도 대장금은 훌륭한
여성으로 살지 않았느냐, 그러니 여성에 대해 이런저런 제약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는 남성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 선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세계에서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 몇 안되는 나라중에 하나인 북한에서 꽤 자주 방영되던 미국산 만화영화가 있다.
그것은 [톰과 제리]다.
이유는? 조그마한 생쥐 제리가 덩치 큰 고양이 톰을 연신 혼내주는 내용이 영판 초강대국 미국과 적대하고 있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방소식을 잘 전달하지 않던 그들의 뉴스에도 유독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의 소식은 곧잘 전했다.
물론 욕설 가득한 논평이지만 이유는 비슷하다. 아버지에 이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사람이 조지 부시다. 미국에서도 아버지가 대통령하더니
아들도 대통령이 되는 상황과 그들의 부자세습이 미세하지만 일정부분 상황이 비슷해서 북한인민들에게는 선전의 일환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논평의 논조가 대충 이렇다.
- 아버지 부시놈이 공과국을 압살하려 하더니 이제 아들놈도... 이에 맞서 우리도 대를 이어 충성... 어쩌고 저쩌고...
문화와 문화상품의 소비는 그것을 소비하는 입장에서 원뜻과 상당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어쨌든 소비자들의 마음에 부수적으로 우리나라를 좋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좋은 일이다.
잡생각에 빠져 있는데 걸음 빠른 전국일주여행자가 민속촌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고 있었다. 그는 한 장소에 오초 이상을 머물지 않았다.
나는 잘 걷지를 못하는 사람이라 헉헉거리며 뒤따랐다.
관광지엔 거의 대부분 이런 느낌의 장소가 있다. 모르고 한 번은 왔지만 다음에 오면 잘 안와질 것 같은 장소. 제주민속촌이 그런 곳이었다.
들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들러볼 만하지만 그렇다고 큰 기대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민속촌 내부에는 예전 제주의 주거방식과 원시형태의 어업기구 등을 자세히 복원해두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물통이었다.
제주에서는 아래와 같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상수도시설을 물통이라고 한다. 가장 깨끗한 위에 물은 식수로 쓰고 다음단계는 채소를
씻는 용도로 쓰고 마지막 단계는 빨래하는 곳으로 썼다니 제주사람들이 물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했는지 느낄 수 있다.
배에서 안면이 있던 커플이 사진찍기 하며 웃고 있었다.
넓고도 좁은 제주였다.
늘 앞서서 성큼성큼 걷다가 DSLR로 연사 몇번 날리고 또다시 성큼성큼 잘도 걸어가던 전국일주여행자가 한곳에서 멈칫했다.
- 왜 안들어가고 멈춰계세요?
- 어, 여기 미로정원이네요. 제가 길치라...
속으로 말했다. 스마트폰을 켜면 되지. 전국일주여행자는 나무를 심어 만들어놓은 미로정원에 살짝 발만 들이고 몇미터 전진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얼른 후퇴하여 다른 전시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따라가며 몹시 웃었다. 인연이란 그렇게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민속촌은 의외로 넓어서 제대로 보자면
한시간 반 이상 걸릴 것 같았다. 우리는 주마간산격으로 빠르게 훑어본 후 성산을 향해 자전거에 올랐다.
제주 표류 팁
- 가끔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걷자. 그곳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장소면 더 좋고...
- 지역을 대표하는 민속촌과 박물관은 시간의 여유를 두고 둘러보자. 여행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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