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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은 남해, 여행자는 길을 벗어나고

자전거 탄 풍경

by 자전거여행자 2011. 10. 11.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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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서 볼 수있는 죽방렴입니다. 원시적인 어구이지만 죽방렴을 통해 잡은 멸치는 그 가격이 꽤 높습니다.

밀물과 썰물 때 물길을 따라 들어왔던 물고기들이 한 번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한 곳으로 몰리게 하는

방식입니다.


싱싱하고 육질이 단단하기로 소문난 멸치떼를 주로 잡아들이는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경이라

죽방멸치, 하면 그 명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죽방렴도 그렇지만 오른쪽 작은 공간에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익은 벼의 황금빛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한 줌 쌀을 얻기 위해 돌을 얼마나 쌓아야 했던 것일까요.




이때까지만 해도 미조를 향해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전거 여행자는 길을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날 때면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큰 그림만 그려놓고 그때 그때 닥치는대로 헤쳐나가는

것이 몸에 배여있어서 이렇게 헛다리를 짚는 일이 잦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목적지가 아니더라도 길은 여행자에게 너그럽기 마련이어서 경험상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남해의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퇴락한 집터와 휴일인데도 을씨년스러운 시골 장터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동면의 보건소 건물을 만나고 나서도 이정표를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 당시엔 스스로가 좀 한심스러웠지만

나중엔 오히려 잘된 일이 되었습니다.


장터와 연결된 길목에 공덕비가 열병식을 하듯 죽 늘어서 있었습니다.

효자를 기리는 비석이야 그렇다치지만 옆에 면장님은 왜 그러셨는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 뜻을 새겨보니 이렇습니다.



[자리를 맡은지 수년 큰 돈 버는 일을 버리고 그 베푸는 바가 두루 펼쳐지고 가난한 집을 일으키니 그 칭송이

일대에 가득했다. 비석으로 그 뜻을 높이 받들게 되어 공경스러운 공간에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천고에 까지

오래 전하고자 한다.]


음... 일삼아 뜻을 해석하고 나니 내용만으로는 비석을 세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자는 이 고을에 

산 바가 없어 면장님의 행적자체의 진위여부 확인은 불가능했습니다. 뭐, 훌륭한 분이셨겠거니 해야겠죠.


다만, 아쉬운 점은 장터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알아먹기 힘들게 한문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나 싶고, 시혜비

라는 비석의 타이틀 자체가 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남해에 훌륭한 사람들은 공간도 더 없으니 그냥 이름만 뭇 사람들의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좋은 일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비문 해석은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몹시 평범하게 이수한 자전거점 운영자가 풀이를 한 것이니 극히 일부

오역이 있을 수 있으나 큰 뜻에는 차이가 없을 겁니다.


이런 오지랖도 여행의 일부.



따뜻한 곳이라 곳곳에 키위 재배지가 수두룩합니다.

너무 맛있게 보여 따먹고 싶었습니다.


키위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인 것과 그에 따른 곡절도 구구절절하고 싶지만, 다음 기회로.



길을 잘못들어 찾아간 해안도로변의 풍경이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습니다.

이 바다를 보고나서야 미조 가는 길이 아니고 남해읍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와버렸고 다가올 길만 생각하기로 하고 페달을 계속 밟았습니다.




- 사장님, 뭐하세요?


자전거점 운영을 하다보니 사장님 소리가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내에게 하대하는 법이 없이 이것 좀 가져와 주시게, 하시던

남해의 장한 할아버지께 말을 건넸습니다.


- 어? 어디서 오시는 길손이신가? 나야 시금치 잘 자라라고 물을 뿌리고 있지.


- 남해에 시금치가 많이 나나요?


- 하믄, 마늘 다음으론 이 시금치가 남해 특산물이지.


- 되게 멋있는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 허허, 찍는 건 좋은데 내가 받을 수가 없어서 별 흥이 안나네.


- 인타네또에다 올려드리겠습니다.


- 거, 좋지.





앞으론 시금치 무침을 먹을 때나 김밥을 먹을 때나 남해 선소 마을의 선한 할아버지 미소가 떠오를 것입니다.

잘못 든 길이라도 얻은 바는 늘 한결같습니다.



예정한 것보다 일찍 남해읍에 당도하는 바람에 이곳저곳 기웃거렸습니다.

한 때 가장 친근한 곳이었던 성당. 

남해에도 성당이 있어 어슬렁거리다가 찾아들었습니다.


언젠간 이방인의 감정이 아닌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재래시장 한귀퉁이 국수집에서 허기를 재우고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역시 한나절로는 다 알 수 없는 곳이 남해였습니다. 멋모르고 계획대로 돌았다가는 너무 길어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길을 잘못들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던 셈이죠.


해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못다한 여행은 다음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두고 나는 그 예전 기억속의 남해대교를 건너 집으로 향했습니다.


남해, 안녕.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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