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위로가 될 때가 가끔 있다. 광안리, 많이 알려진 터라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곳이다. 잘 가꾸어 놓은 계단에 앉아 대교를 바라보고
있다보면 마음의 근심이 잠시나마 수평선 너머로 물러난다.
지면에 수평을 맞추고 치켜뜬 시선에 포착된 광안대교가 유난히 힘차보였다.
길을 잘못들어 찾게된 수영강변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아무것도 없이 휑하던 곳에 마천루가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지상의 방한칸이 아쉬운 나는 입맛을 다시며 뒷목이 아프게 올려다볼 뿐이었다.
이 풍경속에 나의 자리는 없다.
아쉽지만 운명이다.
광안리에 가까워지니 공기부터가 달랐다. 살짝 비릿한 바다냄새가 몹시 반가웠다. 풍경은 냄새를 동반하였고 그것에서부터 나의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기 시작하였다.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부디 결과물이 좋았으면 했다.
11년 늦가을의 광안리를 오래 기억하고 싶으니까...
광안리의 주말은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오늘은 풍물경연이 있었다. 각 구마다 대표 풍물패들이 참가하여 경연을 벌이고 있었다. 풍물은 역시
야외에서 펼쳐져야 제맛이다.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여성들로 이뤄진 풍물패였다. 여성들이지만 국악의 리듬과 흥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풍경은 소리를 동반하였고, 나는 그 반복음에 마음을 의지하여 오래 놀았다.
늦가을의 해는 짧았다. 짧은 해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이 틀림없는 송승헌이 웃고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
[하느님, 저도 다음 생엔 송승헌처럼 멋있는 외모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옆에 이수경 같은 여자친구랑 사귀게 해주세요. 네?
둘도 안바래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따위 기도가 떠오르다니, 나는 실실 웃음이 나고 재미가 나기 시작했다.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어린 주인공을 흉내내어 하느님에게 보챘다.
[여자친구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네? 여자친구 하나만. 응?]
신호가 바뀌었다.
아, 정신 차려야지. 오래된 절집처럼 곱게 늙자. 그런데 왜 이렇게 웃기는 것인지, 흐흐흐... 광안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10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나는 잠시나마 행복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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