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시인과 촌장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넘어 광안리 바다나 구경하려고 자전거에 올랐는데, 하덕규의 가사처럼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였다. 하덕규는 숲을 청춘의 혼돈과 방황의 상징으로 노래했다. 더는 어리지도 청춘도 아니면서 나는
아직 가사의 예의 그 숲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중년을 훌쩍 넘어선 하덕규가 다시 노래를 만든다 하더라도 여전히 혼돈과 방황의 숲을 노래할 것만 같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숲은 사람을 강력하게 유혹하는 힘이 있다.
나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백양산의 허리를 따라 작정한듯 늘씬한 메타쉐콰이어 숲이 지나온 오르막의 고단함을 잊게 만들었다.
처음 숲에서 벗어나서 맞닥뜨린 다음 숲이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편안하게 만드니 나는 도리없이 페달을 천천히
밟아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숲을 조성한 윗대 어른들이 나는 몹시 고마웠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지만, 숲에 들어와 물 한잔 들이키고 앉았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땀이 식고 되려 한기가
느껴진다.
숲은 아마도 혼돈과 방황만은 아닐 거다.
휴식도 있고 평화도 있고...
해서 혼돈과 방황의 공포를 이겨내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숲을 횡단해내는 걸거다.
나는 나의 숲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자전거로 횡단을 할거다.
부끄럽게도 아직은 달리 방도가 없다. 이 튼튼한 뿌리에다 스스로를 들이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바다로 가는 길을 지나쳐 자전거는 만덕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마음은 바다의 풍경이 조금 아쉽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 계절의 바다는 괜히 툭 건드리기만 해도 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감의 청춘남녀들로 가득하다.
그 모습이 요새 괜히 그리워지는 내가 우습다.
바다는 이제 그들의 차지고 나는 밀리고 밀려 숲을 소요하고 있는 거다.
멀리 성지곡유원지가 보인다. 저 산 너머에 바다가 있던가?
사람의 왕래가 잦은 숲에서는 술냄새가 여기저기 진동한다. 뭐, 썩 나쁘지 않다. 넉넉한 숲이 이 정도도
못받아줘서야 어디 숲이라고 하겠나.
다만, 술냄새 속에도 전혀 아무 일도 벌어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바다와의 차이라면 차이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느리고 느린 사람들이 숲의 주인들이니 그럴 거다.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나는 다시 바다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로에서 왼쪽 만덕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두시간 예정했던 길이 숲을 따라
헤매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허기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이제 마지막 숲만 남았다.
소나무 숲은 또다른 느낌을 준다. 특유의 소나무향도 좋고.
자전거가 오랜만에 산악자전거 노릇을 톡톡히 해낸 날이다. 좁고 돌투성이의 길, 진흙탕의 미끄럽던 길, 가팔라 긴장했던
나무계단 길 그 모든 숲의 길을 자전거는 용케 나를 태우고 무사히 횡단할 수 있게 하였다.
숲의 길은 끝나고 나와 자전거가 당도한 곳은 산아래 첫동네 만덕2동이었다.
길의 끝에서 나는 앞으로도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기도했다. 덧붙여 길이 좀 더 선명하기를 나는 바랐다.
산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는 만덕2동의 평상에는 막걸리 내기 장기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숲이던지 긍정의 힘으로 끝내 횡단해낸 마음 여린 어르신들은 나의 사진찍기를 허락하셨다.
카메라를 거두고 건너편 아스팔트 위로 벌어지는 여름 햇볕의 행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하나의
환영(幻影)이 내눈에 보였다.
막걸리를 사들고 내기 장기판에 섞이기 위해 늙은 내가 절름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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