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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에서 변희봉까지

일상다반사

by 자전거여행자 2010. 10. 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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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에 관련해 너무도 많은 기사와 평이 있어서 거기에 한마디 더 거들자니 괜히 겸연쩍어진다.

 

그래도 기어이 거들게 만드는 연기자가 있으니 그는 변.희.봉.

 

괴물같이 버티고 선 한강의 다리들을 배경으로 작고 초라한 우리들의 아버지 변희봉이

 

엽총을 들고 종횡무진하는 것이 내내 안쓰러웠다.

 

기존의 아버지가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회장 최불암이었다면 괴물의 변희봉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 만큼이나 인공적인 캐릭터였다고 하겠다.

 

최불암이 가족의 운명을 이끄는 리더요 분쟁이 있는 곳에선 중재자요 혹은 뭔가 선택의

 

기로에서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선택권자로서 존재했다면 괴물의 변희봉은

 

그런 것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는 작은 매점에서 몹시 하찮은 것들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며

 

작심하고 늘어놓는 일장연설엔 자식들 조차도 귀기울이지 않았고, 전재산을 털어

 

수립한 계획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그러함에도 내가 이 캐릭터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하고 읊조리는 듯한 표정과 손짓 때문이다.

 

연기는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푹, 절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 순간 하였다.

 

삶을 살면서 순간순간 타인의 작은 행동,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상처를 주는 그가 퍽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면 더 아파했을 것이다.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을 옹호하는 듯한 표정과 손짓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 수준이 아닌 인생과 생명에 관한 문제에 봉착했음에도 그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4년 전 글을 복원하였습니다. 이 글을 끄적이고 있었을 때 [괜찮다, 나는 괜찮다.]하고 입으로만 주절거리고 다녔더랬습니다.

마음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입으로만 [괜찮다, 나는 괜찮다.]했습니다. 역시 삶은 연기와 다른 것이겠죠.

 

세월이 약이라고 마음에 커다란 대못 하나를 박아두고 멀어져간 사람들이 문득 떠올라도 이제는 정말 괜찮습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지나간 영화 [괴물]을 꺼내보다가 생각이 나서...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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