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규율속에 살던 400년전 사대부가의 아녀자가 돌아간 남편을 그리며
써내려간 편지가 위와 같다.
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에서 읽을 수 없는 격조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문과는 다르게 원문에서는 남편을 [자네]라고 칭하는 것에서 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는 괜히 전율을 느끼는 거였다.
400년전 문장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가끔 역사드라마에서
쓰는 [은애한다]라는 문장도 그 시기와 상황에 따라 수정되어야만 할 것 같다.
때때로 느끼고 쓰는 일이 거창한 글쓰기가 아닐지라도 그것이 거창하지 않기에
더욱 읽는이는 몹시 벅차다.
[역시 예전 글을 다시 살렸습니다. 2년 전에 이 편지글을 읽었을 때 여러가지 잡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더군요. 어쩌면 살며 사랑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기록이 요즘 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차이라면
현대는 종이뿐만 아니라 이런 가상공간에도 가능하다는 정도겠네요. 조선시대 여인이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문장이
아래와 같습니다.
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럼 격조있게 편지를 씁시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다고 패티김 선생께서 노래도
했으니...]
현대문 번역 / 임세권 :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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