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찾은 산복도로의 야경이 볼만합니다. 시간은 자정에 가까운데 도회의 밤은 이제 시작인가 봅니다.
자전거로 오른 오르막이 멀리 보입니다. 무거운 습기를 머금은 탁한 공기는 산복도로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산복도로의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서 먼데 도회의 불빛을 관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살아오며 낮은 땅에서 못다이룬 꿈의 허망함에 대해 과격하게 장탄식을 하였습니다.
몇몇은 동조하였고 몇몇은 고개를 돌려 입맛만 쩝쩝 다시기도 하였습니다.
자전거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합니다.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 둘이 낡은 전파상 앞에 사이좋게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태웁니다. 산복도로의 밤은 청년들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어둠은 그들의 표정이나
손마디 따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게 하니까요.
물론 그럴일이야 없겠지만, 내일의 태양 아래에서 희망이나 전망 따위가 거세된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들의
얼굴 표정과 손마디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산복도로에서 나눠 피우던 담배연기와 야경이 훗날 그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기를...
오르막은 계속되고 밤은 고요합니다. 앞에 모녀의 대화가 들릴 정도로.
얼굴이 조막만한 여중생의 꿈이 연예인이 되는 것이랍니다. 귀한 딸에게 용을 꽁꽁 쓰면서 열심히 열심히를
강조하는 어머니의 조언이 괜히 공허하게 들립니다.
모녀를 추월해 지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여중생의 얼굴을 자세히 봐두었습니다.
이 더위에 후드티셔츠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텔레비전에 나오면 팬클럽에 가입해야죠.
가끔 질풍자전거점 찮은씨는 산복도로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 좋은데 한 번 산복도로에 올라오면
영영 내려가지 않을 것만 같아 그 점이 걱정입니다.
산복도로에다가 질풍자전거점을 차려놓으면 지역방송국에서 해괴한 놈 산복도로에 출몰했다고 카메라 들고
찾아올 것 같아서 그 점도 염려되고.
으하하 이런 걸 두고 걱정도 팔자라는 거겠죠.
여름의 기세가 꺾이길 산복도로에서 고대해 봅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