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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장편소설 고래

일상다반사

by 자전거여행자 2010. 8. 1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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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래]를 처음 읽었을 때는 잘 읽히는 문장만 기억에 남았다. 문체에 대한 평은 대단한 형식의 실험을 한 것처럼

말이 많으나 찮은씨는 이런 입말을 살린 문체가 왜 자주 소설에 적용되지 않았나 싶다.

 

[고래]의 첫장을 여는 순간 읽는이는 구라와 말발이 엄청 센 친구 하나가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는

착각이 들 것이다. 간혹 너무 상투적인 말발이 말미에 다가가서는 거슬리기도 하지만, 어쨌든 작가는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 것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소설 [고래]를 두번째 읽었을 때는 우리 근현대사와 그 세월을 살았을 소설속의 주인공들이 하나하나 중첩되며

커다란 그림이 찮은씨의 머리속에서 그려졌다. 설명하기 난망한 이유로 내팽겨쳐진 못생긴 노파는 그의 딸을 애꾸로

만드는 세월을 살게되고 정작 피땀으로 일군 재산은 너무나도 우연히 금복에게 떨어진다.

 

노파의 복수라고 하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저주라고 하고 싶은데 노파의 저주는 소설을 통해서 확인하는 재미를 느껴보시길.

 

 

거대하고 화려한 것에 대한 금복의 동경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삽화이다. 금복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우연히

습득한 자본과 약간의 요령으로 소설의 무대 평대에서 거대하고 화려한 역사를 이루게 된다.

 

금복이 평대에서 이룬 모든 것은 마치 우리 역사의 고도성장기를 은유하고 있다 하겠다.

아무리 둘러봐도 온통 산뿐인 산골처녀 금복이 어떻게 성장하고 파멸해 가는지 소설을 통해 확인해 보면서

지켜야할 가치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은 다들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고 보면 못생긴 노파의 세월과 금복의 세월 그리고 책장이

넘어가면서 확인하게 되는 금복의 딸 춘희가 살았던 세월 보다 지금이 엄혹할까.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살지만 역시 당대는 그들이 물려준 유산이 있기에 그래도 비교적 복된 세월이라 하겠다.

 

소설 [고래]

 

여기 소설의 마지막을 수놓는 춘희가 있다. 어머니 금복으로부터 아무런 유산도 없이 오히려 어머니 덕분에 가혹한 고문과

모진 세월을 살게되는 그녀가 소설의 마지막을 채운다. 화려했던 세월을 뒤로하고 몰락한 평대에 돌아와 그녀가 한 것은

벽돌굽기다. 굽고 또 굽고. 찮은씨는 춘희를 읽으면서 학창시절 강의실로 향하던 길목에 즐비했던 반지하 가내수공업

공장의 여공들이 떠올랐다. 딱 큰누이 나이의 또다른 춘희들.

 

지금의 복된 세월은 많은 춘희들이 물려준 유산 덕분이 아닐까.

 

소설 속의 벽돌이 어떻게 쓰이는 가를 확인해 보면 그 또한 복되다.

 

 

춘희는 어쩌다 얻은 아기를 잃게 된다. 말발 세고 구라 또한 센 친구의 떠벌거림이 일순간 잦아들고 문장은 아래와 같이 춘희의

깊은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아이를 내려다보던 그녀에게 문득 해일처럼 거대한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한꺼번에 목울대를 밀고 터져나왔다.

 춘희는 울었다. 절망적으로 슬프게, 숨이 막힐 만큼 필사적으로 울었다. 태양은 점점 더 높이 솟아올랐다. 하얀 눈밭에

 춘희는 하나의 점으로 남아 울었다.  [391쪽 23줄]

 

다음 세대에는 춘희의 눈물이 아닌 어떤 것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것인가?

어쨌든 춘희는 울고 난 후 세상에 벽돌을 남겼다.

 

찮은씨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책장을 덮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수박화채 그릇을 끼고 소설 [고래]를 읽으며 더위를 이겨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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