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저자 박민규의 신작 장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었다. 그것도 무려
정초에 소주잔을 홀짝이며.
영화 아바타가 천만을 돌파하고 자빠졌는 작금의 세월에 소설 나부랑이나 끄적이고 있는 자의 마음은 역시
설날 소주 기운에 소설 나부랑이나 읽어재끼고 있는 자가 아니면 그 누가 알아주겠는가.
개콘 박성광은 이렇게 외쳤다.
-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아...
패배를 밥먹듯 하다가 흔적없이 사라져간 꼴찌 삼미슈퍼스타즈를 기억하였던 박민규는 박성광을 비웃기라도
하듯 못생긴 시녀에게 시선을 고정하였다. 그리고 외모 때문에 상처 받고 있을 여성들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위로하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려 깜짝 놀랄 정도로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연애 이야기.
작가에게는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찮은씨는 소설의 대략을 거의 짐작하였고, 읽으면서
짐작이 맞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이런 능력의 근원은 화장실 소독약 냄새가 복숭아뼈 근처를 맴돌던
이본동시 상영관에 죽돌이를 하며 처음엔 주인공만 보다가 다시 볼 때는 조연배우만 보던 습관에 있으며
또한 무려 설날에 소설 나부랑이나 읽고 자빠졌는 찮은씨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래도 박민규의 말발은 드라마를 때때로 압도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팔십년대를 추억하자면 비분강개의 세월이었을 수도 있고, 마돈나라 불리었다가 디스크자키 김기덕이 본토발음이라며
머다나로 수정하는 바람에 졸지에 머다나가 되어버린 마돈나인지 머다나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외국여가수의
노래가 판치던 세월이었을 수도 있다.
최류탄과 화염병이 기억에 선명한 이가 있다면, 낮에는 주윤발 흉내를 내다가 밤에는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포르노와 거푸 피우던 말보로 담배가 더 기억에 선명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박민규는 [파반느]에서 비분강개보다는 마돈나의 80년대를 몹시 정교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하나의 힘이라면 힘.
소설은 주류와 비주류에 대해 읽는이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한다. 1퍼센트의 주류에 의해 휘둘리는
99퍼센트의 비주류에게 끊임없이 각성을 촉구하는데, 소설이 너무 교훈적으로 흘러가는 형국에서 책을
덮을 뻔하기도.
나 이래뵈도 이대 나온 남자야!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 일이 점점 귀찮아지는 찮은씨다.
개콘 박성광의 외침 [국가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냐아]처럼 국가는 예전이나 앞으로도 뭔가 해줄 것 같지 않으니
국가에 어떤 기대를 걸지 말고 비주류들끼리 깨쳐 일어나자는 것이 소설가 박민규의 방식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이 있을까? 찮은씨는 본좌 허경영식의 방식을 선호한다. 허경영씨에게 물으면
못생긴 여성의 성형수술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공약을 제시할지도...
가끔 우리사회는 소설가에게 소설가 이상의 것을 원할 때가 있다. 개인적인 감상에 조금 읽기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시간이 나면 다시 읽고 싶은 연.애.소.설.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파반느]에서 놓치면 안되는 것이 writer's cut이다. 영화의 Director's Cut처럼 본문과 다른 드라마가
부록처럼 붙어있다. 재기발랄하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부분이어서 따로 언급하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다른 사람의 감동을 반감시킬 것 같아 미안해질 정도이다.
소설의 대략을 짐작하였다고 잘난척하다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박민규는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여성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의도로 썼다고 했다. 질풍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는 남자여서 역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예전에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개콘 박성광처럼 [일등만... 국가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민규를 읽을 일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읽다보면 마음 약한 여성들은 손수건이 필요할지도.
찮은씨는 읽고 나서 위로라기 보다는 그냥 쓸쓸해져서 기분전환 삼아 자전거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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