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홀로 있으면 그대 내 곁에 가까이 와서 부끄러운 내 두 손을 잡아 주는 내 사람이여...
강은철의 [사랑의 소곡]을 흥얼거리며 제법 오래 놀았다. 나에게서 여행이란 내 한몸 맘편히 누일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일련의 행위.
이렇게 낯선 곳을 홀로 다니는 건 딱히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어렵고 억지로 갖다붙여서 소요, 어슬렁거리기, 서성이기 정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계절이다. 해가 너무 짧다보니 길위에서 어둠에 포위될까봐 내내 걱정이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저수지 커다란 나무 아래에 신을 벗어놓고 간 여자는 도대체 누구냐?
너, 아직 잘 살고 있겠지?
나무 아래 신발 벗어놓지 마라. 보는 사람 마음이 내내 흐리다. 누구는 꼭 죽을 사람 시늉을 내어 나무 아래 신발을 벗어놓았는데, 누구는
잘먹고 잘살게 해달라고 나무아래 당골에다가 막걸리를 올려놓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습자지의 폭과 흡사한데 나는 그 얇은 경계를 뚫고자 하는 마음을 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울리지 않게도...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당산나무는 얼핏 보아서는 그 수령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 질긴 수명이 사람의 시선에서는 신령스럽기도 했을 터.
아무려나 오래 버틴 탓에 나무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탁월한 맛의 막걸리를 맛볼 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생... 탁...
- 오빠야 같이 가자... 오빠야...
오빠는 오르막을 쉽게 넘어갔는데 자기 키보다 한참 큰 자전거를 타고 뒤따르던 여동생이 뒤쳐졌다. 차가 없는 길이라 나까지 세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오빠가 나의 존재를 힐끗 확인하고 나더니 좀 속도를 내었다. 마치 도망가듯 오빠는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
오지 못하는 여동생에게 화를 냈다.
- 빨랑 와!
포유류 수컷은 나이가 많든 적든 자기보다 힘이 세어보이는 수컷의 출현에 경계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여동생을
낯선 사람에게서 혹시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어린 오빠의 표정에서 나는 순간적으로 읽었다.
아가, 내 마음이 네 마음과 같다.
나는 자전거를 세웠고 남매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낯선 곳, 낯선 길 위에서 혼자 울었다.
이 마음 그대로 집에 돌아가 이 낯선 곳에서 얻은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생탁을 마실 거였다.
나는 일종의 나무라는 착각에 빠져도 볼 것이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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