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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어야 할

자전거 탄 풍경

by 자전거여행자 2011. 3. 2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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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매화구경을 거른다고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서 게으름을 피울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길을 나섰다.

삶은 유한해서 자전거 타고 매화구경을 갈 수 있을 기회가 무한정 남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어야 할.

 

 

예년에 비해서 봄 기운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전거 위에서 몸으로 맞는 바람은 차지 않았다.

지난 겨울의 추위가 언제 그랬는지 싶다.

 

원동 가는 길은 익숙하고 친근하다. 딸기향과 매화향이 바람에 섞여 자전거 여행자의 코를 자극했다.

 

 

작은 시골 원동이 년중 가장 붐비는 계절이 지금이다. 사건사고 없는 고장의 경찰들이 차량통제로 또한 가장 바쁜 시기가 이 계절이다.

거창하고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지만 순매원쪽에서 불어오는 훈풍과 그 속의 매화향에 사람들은 취해 있었다.

 

자전거에 몸을 기대고 서서 이천 십일년도의 매화와 그렇게 만났다.

 

 

 

 

같은 곳을 여러번 들러도 갈 때마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법이다. 그것이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작년에 들렀다가 보기에 좋았던 원동초등학교의 편백을 다시 찾았다.

 

참 잘생긴 나무다.

 

 

 

 

작은 초등학교 이곳저곳을 거닐었다. 교정 여기저기 세워진 동상들에 눈길이 갔다. 회칠이 세월 앞에 벗겨져가고 있는

독서상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책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 소년의 표정에서 강직함(?)이 묻어나고 소녀의 표정은 왜 이다지도 육구불만(?)에

가득찬 듯한 것인지.

 

 

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아주 약간의 노력.

질풍자전거점 운영자는 동상의 뒷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버럭 쌍욕이 터져나왔다.

 

- 아니, 이것들이 읽으라는 책은 안읽고...

 

 

- 어디서 스킨쉽이야!

 

통상 이런 사태에 직면하면 운영자처럼 정말 강직한 성품의 고풍 따지는 사람들이 주로 쓰는 용어가 버르장머리 혹은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따위이다.

 

어쨌거나 눈앞에 벌어진 일이 이해가 안된다면 다른 각도를 찾을 일이다. 의외로 쉽게 올바른 답을 획득할 수 있다.

 

 

 

편백나무 그늘이 넓었다. 나무에 기대어 서서 이런저런 잡생각에 잠긴다. 자전거 타느라 데워졌던 몸은 선선한

바람이 식혀주었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삼월의 빛이 어지럽게

산란하였다.

 

포유류 숫컷의 이동성과 나무의 기나긴 생명력을 일대일 맞교환할 수 있다면 결과는 행복일까 불행일까.

발 달린 나무가 뛰어다니다가 정해진 수명이 다하여 여기저기 나불어지고 생식기 달린 포유류 숫컷이 다리를

땅에 박고 꼼짝못하는 처지에서 암컷이 다가와 주길 기다리며 오래오래 울부짖고 있는 광경.

 

낮잠이 밀려왔다.

 

 

 

 

긍정의 화신 불패의 영웅, 자전거점 운영자가 가장 존경하는 충무공의 동상을 뒤로 하고 초등학교 교정을 빠져나왔다.

입으로 장군이 남긴 글귀를 중얼거렸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今臣戰船 尙有十二) 

충무공이 모함으로 고초를 겪은 후 다시 해군 사령관으로 임명을 받고 해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 다였다.

해군의 괴멸을 걱정하는 선조임금을 안심시키고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必生卽死 死必卽生) 는 말로 따르는 백성과 군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후 공은 명랑해전에서 전선 12척으로 왜선 133척과 맞서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어릴적 충무공과 관련한 영화를 보면서 영화관 바닥이 뚫어져라 발을 구르고 용을 꽁꽁 쓰며 스크린 속에서 부서지는 왜적들을

통쾌해 했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측면이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그래도 공의 위대함은 영원할 것이다.

 

요즘 세대들에겐 다 하품 나오고 꿈같은 일이겠지만...


 

자전거로 다니던 원동이라 원동역엔 들를 일이 없었다. 해서 부러 자전거의 방향을 역사로 돌렸다.

많은 사람들이 부산방면에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의외로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로 꽃구경 온 사람들도 많았던 거였다.

 

하긴 기차 차창에서 스쳐지나가는 꽃무리의 긴 행렬도 또다른 볼거리일 터이니.

 

볼 수 있을 때 많이 봐두어야 할 이천 십일년도의 모든 꽃들.

빼놓지 않고 다 챙겨서 볼거다.

 

불끈!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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