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에 찾은 금정산성인지 기억이 까마득합니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서문 격인
작가의 말에서 선생은 역사는 물론이고 사물의 형체도 사람의 기억속에서 얼마나 잊혀지기 쉬운 것인지에 대해
염려 섞인 말투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치 산성 주변을 빗대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간섭을 너무 과하게 받은 산은 옛 정취가 사라졌고, 희부연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자동차 덕분에
정말 내가 산에 있는 것인지 조차 의심스러웠습니다.
옛 기억속의 한뼘 길이 물길이 그래서 몹시 반가웠습니다.
물길을 보면서 그 예전 스무살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프로스펙스도 아니고 나이키도 아닌 프로나이스 운동화를
꺽어 신고 어설프게 배워서 어설프게 취한 술기운에 사내놈 서넛은 금정산성 주변 소나무 숲 아래에서 유행가를
목놓아 불러재끼며 놀았습니다.
나이도 어린 현수는 평소에는 꼬박꼬박 반말을 하더니 술에 취하여 하산하는 길이 아쉬웠던지 [행님들아... 우리 이래가지고
집에 가믄 되겠나. 더 놀자! 우리가 이래 산을 내려 가서야 되겠나. 노래도 더 부르고 술도 더 먹고 더 놀아야...]
하다가 현수는 뜬금없이 울었습니다.
[행님 너그들은 내 맴을 하나또 모른다.]
그 해는 박남정의 기역니은 춤이 유행이었습니다.
질풍자전거점 운영자는 자전거로 산에 가면 오히려 속도를 줄입니다. 그냥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서죠. 땀도 많이 흘리고 물도 많이 마시고 좋은 공기도 많이 마시고... 다만 금정산의 경우엔 휴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차가 너무 많아서입니다.
아바의 노래 안단테 안단테를 흥얼거리며 자전거를 타는데, 사실 아바의 안단테 가사내용이 좀 야합니다.
그래도 멜로디의 분위기가 이런 산길에 딱이라서.
남문을 거쳐 금정구로 갈까하다가 도심을 통과하기 싫어서 갔던 길을 되돌아 왔습니다.
라이딩 스타일이 아침에 나서서 오후 늦게까지 타는 장거리에 관심이 많다보니 내리막이 줄창 이어지는 코스가
꺼려집니다.
덕분에 새로 조성된 제2망루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질풍자전거점 운영자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있는 자전거입니다. 몇몇 파트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점수로
치자면 한 70점 정도이지만... 뭐,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산이 산란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해서 여기저기 꽃가루가 날리고 있습니다.
연두가 초록으로 변화를 모색 중인데, 현수의 목소리가 산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행님아! 더 놀자! 우리가 이래 산을 내려가서야 되겠나...]
요즘 점점 더 게을러져서 돼지고기 튀기기도 귀찮아 그냥 편육을 사다가 술판을 벌였습니다.
한 잔 걸치고 중얼거립니다.
-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