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하동.
악양의 들판을 뒤로 하고 망설였다. 인위적인 드라마의 세트장을 애써 찾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잠시 고민 후 마음을 고쳐먹었다. 비록 없던 일을 실제처럼 꾸며놓은 곳이지만 이제 이곳도 하동의 일부이다.
최참판댁 행랑채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멀리 악양의 뜰과 가운데 부부송을 오래 쳐다보았다.
한복을 차려입은 큐레이터는 하늘의 구름이 내려앉았다는 믿기지 않는 신화와 더불어 부부송 주변이 개인 사유지임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현실에서 경험한 하동의 친구 어머니께서는 늘 죄지은 사람처럼 처신하셨다. 장남의 육체적인 아픔과 세상사의 고통이
하나의 수의처럼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하동의 리얼리티는 푸석푸석 무너져가는 담벼락 아래 산화되어가는 엽전과 도회에서 찾아오는 동생의 친구들을
대접하기 위해 불편한 몸으로 휴일 내내 낚시대를 던지던 장한 형님의 어깨와 대나무 평상에서 새파란 아들들에게
큰절을 받으시던 반백의 아버지와 정지간에서 듬성듬성 썰은 은어의 살을 정갈하게 담으시던 어머니의 손길에 있었다.
강산이 변하기 예전의 일이라 굳이 지금의 하동과 불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쨌든 그날의 각시붓꽃 같던 친구의 여동생은 친구의 친구와 좋은 인연이 되었다.
맑고 깨끗한 하동의 산하가 소설 속 서희뿐만이 아니라 친구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생산한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이 작은 고을에도 하수를 정수하는 장치가 생겼다.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뒷방 늙은이도 아니면서 자꾸 예전 이야기하기가 좀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하수구에 이렇게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은 흔치 않다.
아마도 관광객이 늘어나서 그에 따른 오폐수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가 되어 행정의 힘이 작동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곳을 찾은 사람이면 정말이지 지나간 흔적을 남기지 말았으면 한다. 찾은 듯 안찾은 듯 소리소문없이
그렇게...
최참판댁 행랑채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이제 관람료 천원을 내어야만 추억을 살 수 있는 세월과 그렇지 않았던 세월을 동시에 떠올려보았다.
모두에게 다 잘할 수는 없다. 다만 소수에게라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주변의 사물조차도 소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 예전의 친구와 어머님 아버님 형님께 하동의 하늘에다 대고 문안을 드렸다.
- 영수, 하동 다녀갑니다.
무엇에 쫒기 듯 나는 허겁지겁 자전거의 방향을 화개로 돌렸다.
그럼.
초여름 김해 (0) | 2011.06.05 |
---|---|
오월은 하동, 쌍계사를 향해. (0) | 2011.05.17 |
오월은 하동, 평사리에서. (0) | 2011.05.15 |
4월 황령산 봉수대에서 (0) | 2011.04.18 |
봄의 일상 (0) | 2011.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