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통영6, 충열사와 세병관 그리고 다시 통영항에서

자전거여행자 2012. 6. 8. 22:07



아침에 배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 못했는데 점심 무렵 욕지도를 빠져나오는 배에 오르자 피곤이 밀려왔다. 이층 옥상과도 흡사한 

선실 꼭대기 평상에 벌렁 누워 하늘을 보니 세상이 참 별 거 없었다. 나, 하늘, 그리고 바다.


아! 저기 옆에 지나가는 섬.


내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삼덕항에 내려 다시 산양일주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데 조금 힘들었다. 혹시 자전거로 갈 사람이 있다면 산양일주도로는 한 번에 돌 것을

권한다. 일주도로를 먼저 돌고 다른 곳을 찾는 것이 오히려 체력적으로 덜 힘들 것이다. 거리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은데 오르막의 경사가

가팔라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는 제법 어려운 코스이다.


중간엔 횟집 말고는 혼자 식사하기 만만한 곳이 없다. 해서 통영에서 든든하게 먹고 한 번에 일주를 끝내버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어렵게 산양일주도로 라이딩을 끝내고 다시 통영시내로 접어들어 늦은 점심을 먹었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구한 통영관광지도를 펼치고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동선을 정했다. 나는 당연히 이순신장군 유적지가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뭐랄까, 장군의 유적지는 뒷방에 밀려난 늙은이

의 모습처럼 조금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데.




착량묘는 왜란이 끝나고 이듬해 이순신장군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부하들과 인근 백성들이 장군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승리의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에다 사당을 만든 통영사람들의 장군에 대한 존경이 느껴졌다.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는데 중년의 여인이 현지주민에게 이것저것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순신장군의 흔적을 자세히 묻고 있었다.




달디 단 통영꿀빵을 입에 물고 강구안을 어슬렁거리는데 저 멀리 동피랑 벽화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눈과 귀에 익은 곳이라 자전거의 핸들이

자연스럽게 동피랑을 향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달리 설명이 필요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알려진 이름에 비해 벽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별 내용이 없는 곳이 이름이 알려져 괜히 동네 주민들 생활만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말만 벽화지 저 정도 재료로는 창작품으로서 항상성

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한두해만 지나면 저절로 색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고 주기적으로 급조된 그림이 덧칠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한무리의 망니니떼들과 같은 수학여행객들이 좁은 골목을 시끄럽게 떠들며 지나갔다.


여러모로 한심한 생각이 들어서 그냥 카메라를 접고 충열사로 향했다. 




내가 길치라서 그런지 몰라도 통영의 교통체계는 모두 미륵산케이블카 중심으로 되어 있었다. 케이블카는 일부러 안탔다. 나는 이 케이블카가

하나의 성공모델로 알려지는 것이 좀 두렵다. 머지 않아 한라산에도 케이블카, 설악산에도 케이블카, 지리산에도 케이블카, 온통 나라가 케이블

카 천지가 될 것 같아서이다.


통영의 랜드마크가 어쩌다가 케이블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도처에 케이블카 타러가는 곳을 알리는 안내판은 많은데 어째 충열사는 이렇게

찾아가기 힘든 것인지. 


이순신장군의 도시 통영이 이순신이라는 이 기막힌 자산을 더 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말하면 참 고리타분하다 하겠지만 외국도 케케묵은

로빈훗으로 영화도 울궈먹을 대로 월궈먹고 삼국지라는 텍스트를 가지고 드라마 영화 에니메이션으로 두고두고 활용한다.


성서는 또 어떤가? 이천년도 더 지난 스토리로 영화화된 것만 해도 수십편이고 성지순례만으로도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꺼리가 없어서 홍길동을 찾아나서고 변강쇠와 옹녀 타령하고 앉았는 지자체에 비하면 통영은 복 받은 곳 아닌가? 이순신을 먼저

잡아라. 먼저 잡는 곳이 임자다. 






일제가 훼손한 통제영이 복원중이었다. 공사가 한창인 세병관 주변은 을씨년스러웠다. 이 곳을 먼저 다녀간 시인과 작가들의 평에 의심이 

들었다. 세병관 근처는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는 크게 건질 곳이 없는 곳이다. 내가 읽은 책의 시인과 작가들은 글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미화한 감이 없잖아 있어 보였다.


세병관...


세병관은 만하세병(挽河洗兵)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두보의 시에서 따온 말이다. 찾아봤더니 시인의 원래 뜻은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어내어 오래 못쓰게 할까, 였다. 칼에 피를 뭍히고 싸움박질에 몰두하느라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니 시인의 눈에는 그 모든 병장기들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시인의 마음이야 그냥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

이고 덧붙여 조선의 장수가 커다란 통제영 건물의 현판을 세병이라고 지은 속뜻도 범상치가 않아 보였다.








다시 통영항이 보이는 곳에 섰다. 통영은 이순신장군의 도시이자 육지와 섬을 잇는 소중한 중심축이었다. 나는 바다의 기운을 끌어와

내 자전거와 지친 마음을 씻고 잠시 휴식을 가진 뒤 다시 다른 섬으로 가는 배를 탈 작정이었다.


통영에 서 있으니 남해의 섬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