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5, 욕지도 라이딩
찔레가 한창이라 길은 꽃향기로 가득했다. 찔레꽃이 향이 그렇게 강한 꽃이 아닌데도 공기가 깨끗한 곳이다보니 다른 곳보다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가끔 운동을 다니는 도회의 길가엔 장미가 꽃봉우리를 터트릴 때가 있는데 그 옆이 큰 찻길이라 빨간 장미에서 어떤 향기도
느낄 수 없었다.
통영 하고도 욕지도의 맑은 공기를 마셔보니 평소 얼마나 탁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르막이 많은 일주도로는 꽃향기
덕분에 덜 힘들었다.
산딸기로 착각하기 쉬운 뱀딸기가 눈에 띄었다. 생긴 모양은 되게 예쁜데 씹어보면 냉냉한 것이 니맛도 내맛도 없다. 식물은 근본적으로
이동할 수 없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벌이 날아들고 포유류들이 접근한다.
꽃의 화려함과 그 속에 꿀의 유혹에 못이겨 접근한 벌의 힘을 빌어 그들은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단단한
씨앗이 숨어있고 포유류는 달콤하거나 새콤한 과육만 발라 먹고 씨는 버리거나 삼켰더라도 소화를 못시키고 배설하게 된다. 비로소 식물의
다음 세대는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뱀딸기처럼 색만 유혹적인 열매에 과연 어떤 것이 찾을까?
아, 나는 좀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맛이 없다고 다른 동물에게도 맛이 없지는 않을 터.
그렇다면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뱀이?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에 힘은 들었지만 짜증스럽지는 않았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질수록 더 많이 깨끗한 공기를 폐속으로 집어
넣는다 생각하니 무슨 보약을 먹는 기분이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마른 목에 물을 들이켰다. 숨을 고르면서 길가에 다가가니 멀리 파란 바다에는 역시 뭔가를 가두어 양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가끔 이런 광경에 좀 적응이 안되었다. 저 넓은 바다에 사람이 잡아서 내다 팔 물고기가 정말 없는 것일까? 있기야 있겠지만
소일삼아 하는 낚시에나 걸리고 그물로는 돈이 될만큼 잡히지 않으니 저리 양식을 하고 있는 걸 거다.
물고기가 넉넉하지 않은 바다라고 생각하니 왠지 허전하다.
욕지는 아름다운 경관과 더불어 고구마가 특산물이다. 말은 안되지만 붉은 황토에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갓 심어놓은 고구마순이 물을 맞고
있었다. 황토에 붉은,이라고 꾸밀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흙에서 붉은기가 돌아서이다.
이 깨끗한 흙에서 자란 고구마는 얼마나 맛있을까?
철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고개의 경사는 좀 센 편이다. 그나마 다니는 차가 적고 비교적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한가지 유념할 것은 중간중간 욕지도선착장 가는 이정표가 있는데 그 이정표는 산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다.
일주도로가 아니니 중간에서 길을 잘못들면 안된다. 통영에서 얻은 욕지도 여행지도가 중간에 길이 끊어지는 것으로 잘못 제작되어
있어서 처음엔 혼란이 심했다. 가보니 일주도로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새천년기념공원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언덕을 넘으니 영화촬영지였던 삼여전망대가 나왔다. 사진으로만 보던 기암괴석들이 반가웠다.
새천년기념공원에 서서 건너편 야포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낚시 온 중년의 남성이 대단하다며 캔커피를 건넨다. 염치불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커피를 받았다. 그러고보니 커피 한잔이 간절한 순간이었다. 크게 맛은 모르고 마시지만 오래 습관이 되다보니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은 아침이 왠지 허전했다.
아이스박스에서 나온 차가운 커피를 한모금 마시니 간사하게도 세상이 좀 달리 보였다. 사실 더운데다 오르막 때문에 사람이
진이 빠져서 주변이 눈에 잘 안들어오던 시간이었다.
이곳 출신 언론인의 글이 비에 새겨져 있었다. 이 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특파원이 되어 파리로... 이제 이런
드라마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섬의 아이들에겐 이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장벽이 너무 높은 탓이다.
어느덧 일주도로는 끝이 났고 삼거리가 나타났다. 야포나 노적은 일주도로가 없고 들어갔다가 다시 같은 길을 되돌아 나와야 한다.
야포는 노적의 정반대에 있는 곳이라 두곳을 다 들르기에는 힘이 들어 라이딩을 포기하고 나는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두시간 반만에
일주도로를 돌고 만 것이었다.
나가는 배는 열한시 반에 있었다.
욕지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래봐야 십분도 안걸리는 동네지만 보건소가 있었고 도서관이 있었다. 그 유명한 짬뽕집도 보였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먹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음식을 줄을 서서 기다리기까지 하면서는 먹지 못하겠다.
맞은편 선착장에는 통영여객선터미널로 가는 배가 먼저 들어왔다. 나는 남은 산양일주도로를 마저 돌아야 하니 삼덕항 가는 배를
타야했다.
욕지도에서의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 섬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괜히 뭔가 잊어먹고 섬에 두고 온 듯하여 떠나오는 마음이 내내 섭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