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통영3, 김밥 먹고 산양일주도로 타기

자전거여행자 2012. 6. 3. 16:25

 


아무리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통영은 아름다운 항구였다. 배에서 내려 식당을 찾았으나 좀 만만하게 보이는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좀 알려진 곳을 미리 물색해두고 왔으면 좀 편했을까?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아서 모를 일이다. 자전거를 타고 두리번거리니 도로엔

모두 횟집 아니면 충무깁밥 아니면 해물뚝배기집이었다.


혼자 다니는 자전거여행자가 좀 섭섭할 때가 있는데, 그건 전국의 음식점들이 미리 작당을 한 것인지 도무지 일인분은 팔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좀 그럴싸한 음식은 일인분을 시켰다가 야박한 대접을 받은 적이 몇번 있어서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지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만날 짜장면집 아니면 국수집이나 전전하고 다닌다.


입맛만 다시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는데 눈앞엔 해저터널이 어둑신한 아가리를 벌린채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이 터널을 판 의도가 썩 좋은 뜻이 아니어서 입맛이 쓰지만 그렇다고 마냥 없앨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그 시대를 통째로

들어내지 못한다면 좀 기분좋게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때도 이제는 도래하지 않았나 싶다. 일제가 다리를 놓지 않고 터널을 판 

이유는 다들 아시다시피 이순신장군께 패배를 당하여 그들의 선조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 터널 위다. 해서 그 위로 다리를 놓아 밟고

다니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하찮고 하품 나는 뜻이지만 나는 그들이 우리 땅에 만들어 놓고 도망간 건물이며 다리며 터널을 볼 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하나

있다. 높은 완결성이라고 해야 하나... 어쩌면 세월이 그렇게 지났는데도 저처럼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인지. 얄밉게도. 


동시에 좀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이 그들은 두고두고 우리 민족을 지배할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튼튼하게 짓지 

잠시 왔다가 가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정성을 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눈으로 어딘가 트집을 잡아 건드리고 싶은 곳을 억지로 찾아보아도 잘 띄지 않는다. 


우리도 더 분발해야 하는데 요즘도 뭔가 만들고 나면 어디가 줄줄 새는 일이 잦다하니 안된 일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내 눈에 제일 먼저 포착된 곳은 짜장면집이었다. 그래, 짜장면이나 먹자, 하다가 옆을 보니 테이블 서너개가

고작인 아주 작은 충무김밥집이 보였다. 작아서 만만한 김밥집 담벼락에다 자전거를 기대어 놓고 들어섰다. 신심이 깊은 아주머니는

주 예수를 믿으라! 라고 적힌 액자를 가게 내부에 사방팔방 붙여 놓고 있었다.


- 김밥 주세요.


- 몇인분 드릴까요?


- 저 혼자 먹고갈 겁니다.


신심 깊은 아주머니의 인상이 안좋아진다. 주여,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하는 표정이다. 이럴 때 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버프를 내리고 웃으며 접대성 멘트를 날리는 것이다.


- 통영에 오랜만에 오니 구경은 참 좋은데 먹고 자는 일이 힘드네요. 어쩌고 저쩌고...


자기가 사는 고장을 보기 좋다고 칭찬하는데야 싫다할 사람이 없고 요즘 사람들에게는 별로 안먹히는 얼굴이지만 5-60대에게는

좀 먹히는 비쥬얼의 소유자가 나란 사람이다. 허허허...


아주머니의 얼굴에 강 같은 평화가 흐르고 김밥을 서너개 더 뭉쳐서 접시에 얹어 주었다.



김밥보다 같이 나온 시락국에 먼저 회가 동했다. 멸치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육수를 끓여 낸 국물향이 너무 좋았다. 

육수용 대멸의 비린맛이 아니고 잘 말린 중멸을 통째로 집어넣어 끓여낸 시락국을 수저로 떠서 입에 넣으니 뭔가 잔뜩 집어넣어 복잡한

맛이 아닌 어딘가 비어있는 결핍의 국물맛이었다.


허전한 맛이어서 자꾸 수저는 가는데 질리지 않았다. 


요즘은 충무김밥을 먹은 사람들의 반응이 썩 좋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속을 꽉꽉 채운 김밥, 아니 그것도 모자라 치즈니 

참치니 입안을 온통 어지럽히는 김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결핍 투성이의 음식이 입에 맞을 리 없다. 이 음식의 유래는 두가지인데

개인적인 생각에는 역시 뱃일 나가는 가장에게 바다에서 밥 굶지 말라고 급하게 만든 음식이라는 설이 맞는 것 같다. 흔들리는 배에서

수저를 놀리기도 그렇고 음식의 변질도 막아야하는 방편이 이런 형태의 김밥이었을 것이다. 다른 유래는 강구안에서 관광객을 대상

으로 배에서 간단하게 요기할 음식을 만들어서 판 것이 오늘날 충무김밥의 원조라는 설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다. 위풍 센 방안에 이불을 덮어쓰고 연말 십대가요제를 보고 있는데 아버지는 늦게까지 오지 않으셨다.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께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 드릴 아랫목의 보자기로 싸두었던 밥통을 열어 충무김밥 비슷한

김밥을 싸주셨다. 속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김을 네모나게 찢어 밥 한 숫갈 얹고 조선간장 살짝 밥 가운데 찍어 알사탕을 포장한 모양

으로 한입 먹기 좋게 밥을 싼 뒤 우리 입에 넣어주셨다. 나와 동생들은 제비새끼의 입모양을 하고 어머니의 김밥을 받아 먹었다.

어머니는 먹지 않으셨다. 당시 어린 소견으로는 어른들은 몸이 큰만큼 배도 쉽게 안고파지는 줄 알았다. 밥은 맛있었고 배는 우리가

불렀는데 얼굴은 어머니가 더 환했다.


내 경험을 비춰봐도 역시 뱃일남편목적설의 유래가 맞는 것 같다. 강구안관광객대상장사설은 원조간판을 강조하는 측에서 급조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충무김밥은 뭔가 채우지 않은 결핍의 맛을 아는 사람이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예전 충무김밥은 오징어 무침에 오뎅을 쓰지 않았는데 원가 때문인지 오뎅의 비율이 높았다. 배를 채우고 가게를 나서니 김밥집 

아주머니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아멘.



산양일주도로는 이십킬로미터를 조금 넘는다. 달아공원까지 달리면 일주도로의 반정도 지점이라고 보면 된다. 남해의 점점이 떠있는 

섬들을 구경하며 쉬엄쉬엄 달렸다. 바다목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남해의 가까운 바다에는 이렇게 뭔가 잔뜩 기르고 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동해나 제주처럼 넓고 넓은 수평선의 바다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답답해 보일 수도 있다.



배가 든든해서 그랬는지 의외로 달아공원까지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다. 두시간 정도 걸렸다. 시간이 단축되어 버려 유명한 달아공원의

일몰까지 너무 긴시간이 남아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보았다.



건너편 수산과학관도 보이고.



학림도, 소장군도, 오곡도, 추도, 연대도.




멀리 욕지도, 연화도, 두미도... 


섬에 섬, 섬 너머 섬. 섬들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떤 연예인이 우리나라의 섬을 모두 돌아보고 싶다고 길을 나선 적이 있었다. 

아마 성공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리 많은 섬을 어떻게 다 돌아볼 수 있겠나 싶다. 그러고 보면 섬은 나라의 큰 자산이 아닐까? 

다른 나라에도 이리 섬이 많을까?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눈에 띈 외국인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섬을 방치하지 말고 제대로 가꾸고 보존해서 이방의 사람에게 자랑거리가 되게 만들었으면 싶었다.


 

남은 산양일주도로를 한 번에 다 돌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여행이 아니고 극기훈련이나 체력단련이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다잡아 좀 일찍 라이딩을 마치기로 하고 오다가 발견한 삼덕항 인근의 숙박업소로 자전거를

되돌렸다.


 

스무 가구 남짓의 바닷가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숙박업소에 들르니 사람보다 개가 먼저 길손을 맞이했다. 생뚱맞게 얼굴에 화장이 

되어 있다. 기특한 것은 개도 자기 밥그릇에 밥을 채워줄 손님을 용케 알아보고 짖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개라는 짐승은 열에 아홉 

나만 보면 짖고 달겨들며 생난리를 친다. 특히 자전거 타고 여행을 다니다보면 서너마리 무리지어 짖어대는통에 속시끄러워 죽을 

지경이다. 내가 날을 잡아 이 개놈들을... 갑자기 나를 놀래킨 개놈들을 생각하니 혈압이 오른다.


이참에 하나 짚고 넘어 가겠는데, 개는 반드시 목줄을 쓰길 바란다. 특히 대형견의 경우 키우는 사람의 완벽한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목줄은 꼭 채우길... 가끔 개에게 아이가 물려 죽었다는 뉴스를 접하면 세상에 이런 한심한 노릇이 없다. 대명천지 현대화된 오늘날

짐승에게 사람이 물려죽다니.


나의 동물관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인간보다 더 나은 대접을 동물이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동물은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평화롭게 

살 공간만 확보해주면 될 일이다. 학대나 방치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길 바란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희안하게도 귀여운 포즈를 잡는다. 안에서 숙소의 스탭 한사람이 말했다.


- 개가 자기 찍는줄 알아채고 이쁜짓을 한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찍어서...

 



짐을 풀고 샤워를 마친 후 바깥으로 나섰다. 산아래에서 불어온 바람이 해 저물기 시작한 시골집의 마당을 쓸고 지나갔다. 나는 젖은

발을 햇빛과 바람에 말리며 혼자 놀았다. 깨가 자라고 있는 마당 한켠에 이 숙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소주병들이 즐비했다. 


숙소의 주인장과 스탭 그리고 나 이외의 다른 손님과 같이 식사를 마쳤다. 워낙 주변에 식당이 없는 한적한 곳이라 주인장과 스텝이 

먹는 상에 수저와 밥공기를 얹는 방식이었다. 좋은 대접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그냥 시골 형네에 가서 거실에 뒹굴거리고 있는 느낌으로 프로야구를 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내리자 숙소로 지친 여행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삼일째 통영의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는 여행자, 여수엑스포를 거쳐 남도를 훑고 있다는 여행자, 애플리케이

션 프로그래머, 선배 찾아 온 후배 등등. 우리는 갹출한 돈으로 술을 먹었다. 안주는 숙소의 냉장고 안에 흔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지나온 여행지에서 겪은 사연과 다음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낯선 곳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