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통도사3, 신화는 현실이 되어 대웅전으로

자전거여행자 2012. 5. 9. 02:03



7. 신화는 현실이 되어 대웅전으로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이유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의 머리뼈와 치아 등 사리와 입으시던 가사 한 벌을 가지고 귀국하여 통도사를 창건

하였다고 전한다. 그 사연이 구구절절하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에서 문수보살상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는데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님께서 말씀하시길.


- 너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이 장면은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한국드라마 속의 주인공이 어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하는 스토리 만큼이나 문법에 

충실한 이야기 구조다. 즉, 어디서 많이 들어본 스토리이다. 성서에서도 신은 벌을 내리기 전에 의인을 찾는다. 그 의인에게만 구원

의 비밀을 전하여 살려준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노아가 그렇고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롯이 그렇다. 뒤끝 있고 말이 많으며 없는 말도 

잘 지어내는 나 같은 사람은 역시 의심도 많다.


과연 진신사리는 사실일까? 당나라에서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확보한 것도 아니고 승려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님께 받았다

하니 더더욱 믿음이 안간다. 그러나 우리가 일일연속극을 보며 조금 있으면 시어머니의 반대에도 결국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즐기 듯이 너무 따지고 들지 말자. 따지고 들면 만사가 무미건조, 재미 없어 진다. 신화는 현실이 

되어 아름다운 대웅전으로 남았으니 더 바라서 뭘 하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돌아가신 후 곧 다비식이 거행되었는데 사리가 8말 8되나 나왔다 전한다. 많은 양이다. 사리는 여러 스투파에 

분산되어 안치된다. 스투파는 오늘날 우리말 탑의 어원이다. 불교미술에 대해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내용인데, 초기불교는 

이렇게 부처님의 사리가 안치된 스투파, 오늘날 탑이 불교의 중심이었다. 존경하던 스승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는 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스승을 기리고 참배하는 형식이 유행이었고 그러다 보니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모였다. 그 사람들을 수용하는 건물이 하나 둘 생기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불교사원이 된 것이다. 절집에 가서 탑이 보이면 일단 돌고 보자.


불상이라는 형태가 나타난 시기는 한참 후이다. 신화의 주인공을 조형물로 만들기를 즐기던 그리스문명과 불교가 만나면서 비로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하게 된다. 중고등학교 미술시간이나 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간다라미술이라는 말이 기억 날 것이다.


통도사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이유를 이제 대충 알아차렸으리라 믿는다. 즉 초기불교의 전통에 따라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시설이

있으므로 불상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더 특이한 부분은 진신사리가 스투파, 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장율사는 문수보살님의 명에 따라

금강계단이라는 시설을 만들어 그 아래에 안치했다는 것이다. 해서 통도사를 언급할 때는 탑도 불상도 아니고 늘 금강계단이 중심에

있는 것이다.


금강계단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이 포스팅을 통해 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의미로는 금강계단이 크나 역시 볼거리의 측면에서 보면 대웅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침 예불이 진행중이었고 많은 신도들이 

법당 안과 대웅전 주변을 매우고 있었다.





8. 꽃창살


금강계단을 향해 들어가는 입구가 대웅전의 뒷편에 자그마하게 나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합장을 하고 금강계단 주위를 탑돌이 

하 듯 돌았다. 경험이 많은 이들은 절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허리를 숙였다. 나도 괜히 마음이 차분하게 되어 천천히 그들을 따라 돌았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부처님 앞에서 다정하게 미래를 약속하는 듯 나란히 합장하고 걷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여행에서 얻는 행복은 아무 정보 없이 불쑥 찾았다가 의외의 아름다운 모습을 대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금강계단에서 빠져나와 다시 

대웅전 정면으로 이동하니 밑에서 볼 때에는 눈에 띄지 않던 것이 벼락처럼 내눈에 번쩍하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대웅전 꽃창살이었다.

이래서 여행의 상수(上手)들이 멀리에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라고 한 모양이었다.


역광에다가 너무도 빛이 바래서 대웅전 아래에서 올려다 봤을 때는 이 아름다운 꽃창살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카메라의 셔터를 

얼마나 많이 눌렀는지 기억에 없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도 덩달아 꽃창살에 눈길을 한 번 더 주었다.





- 엄마, 내가 예쁘게 찍어줄 테니까 창살이 나오게 바짝 붙어보세요.


- 다 늙은 엄마 얼굴은 찍어서 뭐하게. 너나 찍어라. 


- 아이, 엄마는 늙어도 꽃창살처럼 예뻐요.


- 네가 내새끼니까 그리 보이는 거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늙은 쭈그렁 할매다.


- 오래된 창살도 예쁜 거 봐요. 엄마도 그렇다니깐.


늙은 어머니는 진짜? 하며 틀니를 드러내 웃었다. 그러고보니 참 희안하게 곱기는 곱구나, 하였다. 나는 창살에 색을 마음속으로 입혀

보았다. 색이 바래기 전에도 아름다웠겠지만 역시 지금이 더 낫다. 나이가 들어도 화려한 것을 갖추고 있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겠다.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못질이 보인다. 떨어져 나간 것을 대충 복원한 흔적이다. 








9. 빨리 가자는 이와 더 있자는 이


어느 관광지를 가던지 자주 듣는 큰소리가 있다. 대부분 나이 자신 남자 어르신들이 주로 이렇게 큰소리를 친다.


- 자, 이제 다 봤제? 빨리 가자. 다리 아프다. 뭐, 볼 거 있다고 꾸물거리냐.


모처럼 가족 나들이를 나와서도 그렇고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와도 그렇고 어째서 저 나이대의 어르신들은 서둘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래서 늘 옆에 마나님의 입은 제법 튀어나와 있다. 빨리 가자는 소리에 익숙해 있다가 기단 아래

휠체어에 의지한 노할머니의 태도가 제법 신기했다.


- 이거 마저 읽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 어머니... 대충 읽고 가요.



초기 치매기가 있는 노할머니는 마음 착한 따님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안내판 앞에서 글자 하나 빼놓지 않고 또박또박

읽고 계셨다. 다 읽고 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거였다. 따님이 안되 보였는지 지나가던 장년의 신사가 참견을 하였다.


- 아이고 할매요. 공부합니까? 


- 응. 공부는 공부지. 그런데 니는 누고?


- 어라? 할매는 사위 얼굴도 까묵어 놓고 통도사에서 공부하고 앉았네. 허허허.


따님은 얼굴을 붉히며 따라 웃는다. 신사는 말걸기에 재미가 붙은 모양이었다.


- 장모요. 쉬운 한글만 공부하지 말고 여기 옆에 영어도 있네. 영어를 읽어야 제대로 공부지.


- 그건 니 말이 맞다. 그런데 난 영어를 몰라. 그런데 니 누고?


- 에헤이... 사위 얼굴도 자꾸 까묵고 우리 장모 공부는 좀 쉬었다가 해야 되겠네. 너무 열심히 하니까 사위도 못알아묵지. 자자, 우리

장모님 인자 저기 그늘로 가서 좀 쉽시다.


- 그라까? 좀 쉬까?


신사는 휠체어를 잡아 그늘로 밀었다. 열걸음 남짓 걷다가 노할머니가 눈치 못채게 몰래 휠체어를 따님에게 넘겼다. 그는 다시 가던 

길로 갔다. 따님은 고마움을 눈인사로 대신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 뒤편엔 이렇게 나를 깜짝 놀래키는 솜씨가 숨어 있었다. 대웅전 기단의 돌을 가공한 모양을 살펴볼 일이다.

저 아귀를 맞추기 위해 커다란 돌덩이를 쪼고 있었을 신라 석공의 모습이 좀 괴기스럽다. 경주 불국사를 가도 이와 같이 돌을 가공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정말이지 옛사람들의 솜씨에는 대충이란 없다. 전각은 왜란 때 불태워졌더라도 기단은 역시 통일신라시대 당대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옳겠다.





오월의 햇살이 따가워 응진전 그늘 아래에 몸을 숨기고 있는데, 예의 큰 목소리가 들린다.


- 자, 이제 다 봤제? 빨리 가자!


할아버지가 지치셨나보다. 나도 피곤했다. 물을 한모금 들이켜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바라보는데 대웅전 팔작지붕이 새가

날개를 편 듯한 모양으로 비상하려 하였다.


저 지붕에 얹혀 나도 날아가고 싶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