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2, 절집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5. 절집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절집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점점 쇠약해져 가고 있었다. 백년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지었다 허물었다를 반복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나무로 지은 집에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앞으로도 천년을 이렇게 버텨줬으면 싶었다. 언젠가 이 모든 아름다운 건축물의
물리적인 수명이 다할 것이다. 아, 그 때가 되면 국토는 얼마나 심심한 공간으로 변해버릴 것인가.
보존과 복원의 기술을 서둘러 익히고 개발하는 동시에 지금 짓는 집도 먼 훗날의 세대에게 그럴듯한 볼거리가 되게 지어야겠다.
그렇게 하려면 공간을 즐기고 소비하는 우리 백성들도 어느 정도는 각성이 필요하다. 너무 눈을 자극하는 알록달록 휘황찬란한
곳만 좇을 것이 아니라 은근히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이런 공간도 아끼고 지키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는 곳 근처 큰 대로가를 지나가는데 평소 그곳은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아마도 구청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 같은데 길가 상점의 간판을 교체하기 시작한 거였다. 무조건 눈에 잘 띄라고
크고 번쩍이는 바탕에 천편일률적인 고딕체 폰트의 간판이 하나둘 철거되고 그 자리를 다양하고 산뜻한 색상에 크기가 작고 입체감을
살린 가게이름만 살린 간판으로의 교체가 이뤄졌다. 이 작은 변화만으로도 길거리가 예의 도시 변두리의 우중충한 분위기에서
어느 가게라도 문열고 들어가면 예의를 갖춘 주인이 밝게 인사를 건넬 것만 같은 거리로 변신이 되는 거였다.
공간을 재산축적의 수단으로만 삼거나 눈앞의 내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사람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공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똑똑한 백성들이니 공간활용법을 찾자고 들자면 못찾을 것도 없다.
확인한 통도사의 창건설화에 따르면 원래 통도사 자리는 큰 연못이었고 연못에는 사람을 못살게 해코지 하는 용들이 살았다고 한다.
자장율사와 선덕여왕이 함께 이곳에 당도하여 율사는 설법으로 용들을 뿔뿔이 흩어지고 하고 한마리만 남게된다. 율사는 연못을 다
메꾸지 않고 남아서 절을 지키겠다는 용이 살자리를 남겨두었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자리가 남아 있다. 말귀를 알아먹은 용들의 태도도
재밌고 모조리 내치지 않고 융통성을 발휘한 율사의 지혜도 눈여겨 볼만하다.
아마도 중앙정부의 체제에 반란을 일으킨 모종의 세력을 통도사라는 종교적인 시설과 자장율사의 지도력으로 흡수해 낸 일을 삼국유사는
설화의 형태로 기록을 해 둔 것이리라. 어쨌건 통도사 창건의 정신은 백성을 괴롭히던 못된 용을 바르게 제도하여 다 같이 잘사는 나라의
유지였다. 종교가 늘 정치권력과 긴장관계에 있을 수도 없지만 너무 유착해도 폐해가 있는 법이다. 이 일은 정치와 종교 두권력이 빚어낸
좋은 사례일 것이다.
오늘날 작은 연못엔 소원을 빌며 던진 동전이 수북하다.
6. 날이 더웠다.
날이 더웠다. 자전거를 타고 온데다 제법 걸은 탓도 있지만 워낙 꼼꼼하게 둘러보느라 유난히 체력이 빨리 소진되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용화전 근처 샘터로 갔다. 바가지에 물을 떠 한모금 들이켜니 땀이 쏙 들어간다. 멀리 영각 너머로 바람에
신록이 넘실거렸다.
저 연한 녹색이 언제 다 자랄까 싶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갈색으로 변하여 떨어질 것이다. 이제 세월이 좀 천천히 갔으면 싶다.
언제부턴가 몸과 마음이 세월의 흐름을 못따라 가는 것 같다. 마음이 급해지는 이유다.
플라스틱 바가지의 바닥을 보니 부산 장림에서 찾아온 신도가 시주를 한 것이었다. 이 신도는 바가지를 사가지고 여기에 두고 간
것일까, 아니면 그냥 돈을 불전함에 넣은 것일까. 몇푼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목마른 사람에게 요긴하게 쓰였으니 시주한
사람은 공덕을 쌓은 것이다.
용화전 앞의 석조발우에 눈길이 갔다.
용화전은 미륵부처님을 모신 곳이다. 다시 이땅에 찾아올 미륵부처님께 공양할 발우라서 저리 거대하게 만든 것일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야 저 큰 발우에 담긴 밥을 다 자시진 않을 것이다. 사람의 지극한 마음만 받고 다시 밥을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실 분이다.
부처님의 마음이야 그렇겠지만 사람의 마음이야 어디 그렇겠나. 하나를 가지면 둘을 채우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근자에 나라 살림은 밥그릇이 큰 자들의 그릇을 어떡하면 가득 채우게 할까만 궁리하였던 세월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밥그릇이 큰 자들의 밥그릇을 채우고 채워서 흘러넘치게 하면 거기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밥을 다른 이들이 줏어먹게 해야
한다는 거였다. 시대착오적이고 그 방식이 참으로 옹졸하다. 우리나라의 군인들이 다른 나라에 파병을 가면 교육 받는
내용중에 하나가 절대 건빵 한봉지 사탕 한알이라도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 던지지 말고 눈높이에서 손에 건네라고 배운다.
이런 군대를 만드는 나라의 경제논리가 낙수효과라니 생각할수록 하품나오는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관료나 학자들이 나보다 몰라서 그리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입에 올리기가 싫다.
부처님 수준의 자비심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수조원씩 이익을 내는 밥그릇을 차고 앉았으면 밑에 중소기업에도 좀
덜 야박하게 대하고 각종 요금이나 가격도 좀 내려라. 그렇게 해서 아낀 돈이 또 어디로 가나? 다 스마트폰 사고 자동차 사고
그러는 거지.
별로 기댈 대상이 없어 구세주 미륵부처님을 기다리던 그 때와는 조금 방식이 달라야 하지 않겠나 싶다.
맑은 물 한사발과 그늘,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대웅전으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에 힘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