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제주표류18]오름

자전거여행자 2012. 3. 28. 16:11



30. 헤어져야 할 사람들, 그리고 두모악의 휴관


성산의 게스트하우스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였다. 여럿이 사용하는 모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만원씩 갹출하여 숙소측에서 마련한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열두명 남짓이 같이한 식사자리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아마 이런저런 후기가 좀 부풀려진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아침의 조식 때의 그 엄숙한 분위기란 잘못하다가는 체할 것 같았다.


부산갈매기가 씻는 동안 안동간고등어는 임대한 자전거를 반납해버렸다. 전화를 걸어 픽업서비스를 요청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와서 트럭에 싣고 간 후였다. 그는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 표류자 형님, 사실 첫날 반납하려고 했는데 억지로 여기까지 온 겁니다. 부산갈매기가 없이 혼자였으면 그렇게 했을 텐데

지금은 좀 후회가 되네요. 제가 원래 의도했던 여행은 그냥 천천히 걷다가 버스도 탔다가 좋다는 곳이 있으면 내려서 구경하고

그런 여유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준비도 없이 쉽게 봤다가 몸도 고생이고...


나는 충분히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숙소 바닥에 배를 깔고 내일의 일정을 이야기하는데 모두 제각각이었다. 부산갈매기는

제주시의 지인에게 맡겨놓은 낚시장비를 받아 갯바위 낚시를 간다고 하였고 간고등어는 버스를 타고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마라도에 가서 짬뽕을 먹겠다고 하였다.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나는 표류중이었다. 사실은 둘을 만나지 않았다면 표선에

서 성산으로 오는 길 중간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 먼저 들르고 우도로 갈 계획이었다. 그들의 일정에 맞추느라 두모악

은 건너뛰고 우도에 들른 것이었다. 어렴풋이 생각난 것은 다시 길을 되돌려 두모악에 갔다가 그 다음일은 그 다음에 정하자, 였다.


간고등어는 같이 마라도에 가자고 유혹했으나 나는 자전거를 버릴 수 없었다. 이 날도 쉬이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수면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두 시간 이상을 잠들지 못했다. 걱정을 달고 다닌 인생이었다. 표류가 끝나고 난 이후의 나날이 이제 걱정이었다.


스스로가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게스트하우스의 풍경은 여느 게스트하우스의 풍경과 같았다. 다들 각자의 일정에 맞춰 걸어서, 차를 타고, 스쿠터를 타고 

하나둘 떠났다.


하멜일행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임금의 호위무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들은 간절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있도록 나가사키행을 요구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정은 조선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하멜 일행의 존재도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행중 항해사와 포수는 알 수 없는 일로 목숨을 잃게 된다. 하멜일행은 전라도 영암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고 같이 칠년여를 모여살았다. 

그들의 통역자였고 같은 고향사람으로서 조선에 정착한 벨테브레이 조선명 박연과는 전라도로 떠나는 나루터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후 조선에 삼년간의 기근이 들어 하멜일행은 여수, 순천, 남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한 고을의 재정이 가뭄으로 인해 하멜일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표류자, 안동간고등어, 부산갈매기는 어제 저녁 잠시 안면이 있던 여성에게 단체사진을 부탁했다. 간고등어는 걸어서 성산일출봉을 둘러

보고 다음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하였고 부산갈매기는 최대한 빨리 제주시까지 간다 하였다. 나는 두모악이 떠올랐다.


우리는 모두 정착한 자가 아니어서 후일을 쉽게 기약할 수 없었다. 그래도 연락처를 성실하게 교환하고 각자의 길로 출발했다.


페달을 밟는 발이 무거웠다.


전국일주여행자와 지나쳤던 길을 간고등어와 갈매기와 지나쳤던 길을 다시 혼자 역으로 거슬렀다. 평일 아침의 성산은 유난히 고요했다.

한시간여 페달을 밟아 애써 찾은 두모악은 아쉽게도 휴관일이었다. 이제 제주에서의 이런 일이 섭섭하지 않았다. 인연이 닿지 않으면 

제주의 풍경은 가끔 이렇게 사람을 거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두모악을 찾으려 했던 이유는 오름과 제주에 대한 고 김영갑씨의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어떤 자세로

천착하였던 것인지 그 사연이 알고 싶었다. 모두 한라산과 바다에 심취해 있을 때 오름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에게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휴관.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사전에 아무런 정보수집이 없었는데 갑자기 용눈이 오름이 떠올랐다. 급하게 지도를 펴놓고 위치를 파악했다. 삼달리 두모악에서

초행길의 내가 찾아가기에는 만만찮은 곳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조식 중에 삶은 달걀 한 알이 가방에 있었다. 나는 달걀을

조심스럽게 까먹고 지방도 1136을 따라 용눈이 오름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31. 오르막을 대하는 자전거 표류자의 자세


지방도 1136의 길을 가다가 발견한 도토리 나무다. 제주에서는 처음 보는 도토리 나무였다. 게다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런 한적한 곳에

푸르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니 괜히 반가웠다. 이 날 날은 언제그랬냐는 듯 꽤 더웠다. 땀을 많이 흘려 페달링하는데 바지가 다리에

제법 걸치적거렸다. 눈가가 따끔거려 손끝으로 살피니 햇빛에 노출된 부분에 화상이 생긴 거였다. 얼굴 전체를 다 가릴 수 없어서 생긴

문제였다. 대기가 깨끗해서 자외선도 강한 건가? 육지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긴 오르막이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오르막을 만나면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저 오르막의 끝에 내가 그리웠던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고 지친 영혼에 다시 페달을 밟을 용기를 불어넣곤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밝은 모습을 떠올리며

페달을 밟고 또 밟는다. 


오르막의 끝에는 역시 그리운 사람은 없다. 다시 길고도 굽은 길이 있을 뿐.


일출랜드쪽의 풍차가 평화롭게 회전하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멀리 오름이 나타났다.


어? 저기 저 잘생긴 언덕이 용눈이 오름?







32. 오름


한라산을 어디까지 한라산으로 봐야할 것인가에 대해 잠시 고민한 적이 있다. 설문대할망의 전설에 따르면 할망이 한라산을 만드느라 치마

폭에 담았던 흙이 떨어져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태생이 한라산과 오름은 같다. 나는 괜히 한라산에 오르지 못하는 대신으로 오름에 오르는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렇지 오름도 한라산의 일부로 봐야...


처음 인상은 아, 참 잘생긴 언덕이다. 참 만만하게 보여서 죽자사자 오르지 않아도 되겠네. 사람의 시선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곡선이다,라고

느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천천히 오름에 접근했다. 


제주사람들은 오름 옆을 갈아 고단하게 일하다가 가끔 오름 아래에 누워 잠시 선잠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오름 옆에서 아이와 아내와 거칠지만

단맛의 새참도 들었을 것이다. 일하다 쉬다 먹기를 함께 한 그 오름의 밑자락에 그들은 어느날 문득 거기에 묻혀 또 하나의 오름이 되어 있었다.




바람과 시간마저 정지한 순간, 오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이 외로움을 이겨낸 예술가의 영혼이 떠올랐다.

나는 오름의 부드러운 흙에 몸을 누이고 한동안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몸을 모로 돌렸다.


아무도 없을 것 같았는데 맞은편 봉우리의 정점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왠지 그와 인사를 나누는 일은 오히려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 성산쪽을 봤다. 고개를 돌려 다랑쉬 오름쪽을 보았다. 눈을 돌려 내가 달려온 길 그리고 내가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만 같은 길을 보았다.


오름마저 나를 떠밀고 있었다.







자전거 표류 팁


- 제주의 오름은 약 360개 정도다. 가까운 한 곳에 올라보면 제주의 또다른 풍경과 맞설 수 있다.


- 지도로 길을 찾을 때는 지도상의 도로번호와 길가의 이정표에 표기된 도로번호를 일치시키면서 방향을 잡으면 거의 길을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