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제주표류17]다시 우도, 그 섬에 왔다.

자전거여행자 2012. 3. 27. 14:02



28. 다시 우도, 그 섬에 왔다.


표류 중에 만남과 헤어짐은 몹시 우연이었다가 참 허무하게 이루어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각자의 일정에 따라 

하루를 시작했다. 장기체류자들은 계속 늦잠에 빠져 있었고, 어떤 이는 자동차를 타고 출발했고, 어떤 이는 걸어서 숙소를 떠났다. 

작별의 인사마저 없이. 그렇게.


표류자와 부산갈매기 그리고 안동간고등어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짐을 챙기고 막 출발하려고 하는 찰나 여성 둘이 렌트

카를 타려고 했다. 부산갈매기는 그 짧은 오분여의 시간동안 놀라운 말솜씨를 발휘하여 두사람의 전화번호를 따내는 신통력을 

보였다.


자전거여행 경험이 없는 안동간고등어의 속력에 보조를 맞추느라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우도행 배편에 올랐다. 그것도 내가 

재촉을 하여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안그랬으면 우리는 우도 안에서 또 시간에 쫓겼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자 점심때가 지나있었다.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자전거의 방향을 잡았다. 우도등대공원으로 단시간내에 가려면 시계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아 오르막을 바로

오르면 된다. 천진항에 내리면 자전거, 스쿠터, 전동차 등 여러가지 탈 것을 임대해 주고 있다. 걷기가 부담스럽거나 시간에 쫓기는 

사람이면 적당한 탈 것을 빌리면 된다.


우리는 첫번째 만나게 된 찻집 겸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시켜 먹었다. 수염이 긴 주인 영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도

한잔씩 하였다.


안동간고등어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며 말했다.


- 저도 서울에서 직장생활 딱 오년만 더 하고 이런데서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그러자 나와 주인 영감님이 동시에 웃었다.


- 간고등어님, 제주 부동산 가격은 서울과 맞먹어요. 


영감님이 한수 더 거들었다.


- 우도의 부동산은 제주보다 더 비싸. 허허허. 그러나 겁먹지 말어. 살려고 들면 기회는 많은 곳이 제주야. 우도는 쪽파와 땅콩을 

많이 재배하는데 그 사람들 도회의 월급장이 서너배는 벌어. 마누라도 방금 파밭에 일하러 갔어.


바깥으로 자전거를 타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슬슬 우도의 아름다움에 취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가는 우리를 

향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영감님이 말했다.


- 머리에서 가슴까지 거리가 구만리라는 이야기가 있어. 너무 머리로만 생각하지마. 그러다간 생각만 많아지고 평생 아무것도 못해.

가슴이 시키는대로 해야 해. 자네들의 그 식지 않은 가슴이 시키는 바로 그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래야 후회를 남기지 않아.


이 말이 계속 등뒤에서 울렸다.



우도는 몹시 아름다웠다. 다들 사진을 찍느라 오분을 제대로 달리지 못하고 멈추기 일쑤였다. 다시 전국일주여행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멀리 제주의 오름들이 아름다운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섬 안의 섬에서 다른 섬을 마주하고 있는 거였다. 고립감이 

들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자전거의 평속은 시속 오킬로미터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답답하지 않았다. 차라리 걷는 사람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몰랐는데, 벌써 우리는 우도등대공원으로 통하는 등산로 입구에 다다랗다. 부산갈매기가 말했다.


- 우와, 표류자 형님 덕분에 참 좋은 구경했습니다. 가슴이 확 뚫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빨리 도착했네요.


그 순간에도 안동간고등어는 DSLR로 파노라마 샷을 날리고 있었다. 셔터박스에서 나는 경쾌한 기계음이 사람의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차라라라라락






29. 우도 등대, 그립고 또 그리운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는 곳


이제 웬만한 곳은 걷기가 두렵지 않았다. 걷기가 싫어 그곳에 가지 않으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등대까지는 침목과 난간이 잘 정비되어 있어서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거리도 그렇게 길지 않고 약 2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가는 길 중간에서 바라다 보이는 우도의 집과 들이 여느 외국의 풍경과 견주어도 뒤질 것 같지 않았다.


우도 등대 공원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우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좋다던 소문이 헛되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등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서 파랗고 끊간데 없이 펼져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다는 커다란 스크린이 되어 그립고 또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 이젠 가야 되겠죠.


누군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 사람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 그래야겠죠. 집이 아니니까.


안동간고등어가 나섰다.


- 같이 기념사진을 찍어요.


우리는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환희의 기쁨도 그렇다고 깊은 슬픔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의 표류자, 간고등어, 갈매기

가 서로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우도를 떠날 시간이었다.

 





자전거 표류 팁


- 자전거 여행자일 경우 우도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다. 일주거리는 약 16킬로미터이므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 등산로 입구에서 우도등대공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소요된다. 자전거는 근처 거치대에 묶어두면 된다.


- 전동차 운전자들의 운전이 미숙한 경우가 있다.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