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제주표류2]시계 반대 방향

자전거여행자 2012. 3. 18. 17:03



3. 시계 반대 방향


자전거로 제주를 달릴 때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이유를 종합해보면 아래와 같다.

. 그렇게 해야 맞바람을 덜 받는다.

. 그렇게 해야 바닷가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기 때문에 더 좋은 경치를 볼 수 있다.

여기서 덧붙이자면 이렇게 돌아야 여행 초반부가 오르막의 빈도가 낮고 볼거리 자체가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진다. 초반에 좋은 풍경에 

익숙해져 버려 여행의 막바지가 싱거워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현지인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역시 서귀포와 제주의 동부쪽이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다.


첫번째 오르막에서 길 좌우로 용담동 주민들이 환히 웃으며 표류자를 반기고 있었다. 사진을 완전히 가득 채우지 않고 듬성듬성 비워둔

까닭은 뭘까? 아마 다시 태어날 아이를 상징하고 있음이요. 반대편의 빈공간은 죽어갈 사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었다. 돌도 흔했다. 7년 만이니 많이 변해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무너졌다.




길이 진행되면 될 수록 나의 기억은 그 예전을 비교적 정교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여전히 제주는 공사중이었다. 리조트가 생겼고 리조트가 

시들해지자 그 자리를 펜션이 대신했고 펜션이 시들해지자 그 자리에 게스트하우스가 생겼고 게스트하우스의 번창은 주변 민박과

여관업에 심각한 위기를 던져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폐허처럼 변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건물들이 제법 흔했다.


지붕이 낮고 돌담이 빙둘러 바람을 막고 있는 전형적인 제주의 집 앞에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배가 고팠다.


하멜의 일행이 조선인들에게 처음 제공 받은 음식은 흰 쌀죽이었다. 하멜은 자신들이 너무 굶주렸기 때문에 갑자기 단단한 음식이 속에

들어가면 탈이 날 것을 염려해 조선인들이 쌀죽을 주었다고 이해했다. 사실일 가능성이 몹시 높은데, 조선인의 착한 심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가방속의 먹다 남은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4. 육지것


제주사람에게는 제주 이외의 것은 모두 육지로 통한다. 육지소식, 육지음식, 육지술, 육지정치... 사람도 대체로 육지것들, 이라고 칭한다. 

약간의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 태도에 대해 육지것들은 약간의 이해가 필요하다. 제주사람의 입장에서는 역사상 육지것들이

입도해서 좋은 꼴을 보여준 적이 희박하다. 몽골의 침략 때부터 4.3은 물론이고 늘 피해자였다. 


피해의 경험이 내부결속으로 이어져 제주사람들은 은근히 제주 자체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 내가 경험한 타지방 

사람들은 중앙 정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아도 자기 동네 문제에는 시큰둥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육지것들은 제주사람의 삶과 방식을 은근히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은 하멜도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

요즘도 아쉬울 때는 다급하게 부탁을 하다가도 섬을 벗어나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어서 제주사람들은 제법 섭섭해 한다.

해서 제주 사람들은 육지것들에게 정을 주기를 내심 주저하는 습관이 있다.


내가 이런 사정을 어떻게 아냐면 나 또한 제주의 지인분에게 그렇게 대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물론 상당히 반성하고 있다.

이제 표류자의 신분으로 제주에 다시 들른 나는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건강한 삶을 이어온 제주도민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태도를

내내 견지할 것이다.


예전 휴일이면 찾던 도두동의 방파제와 등대가 반가웠다. 그때엔 없던 조형물들이 표류자를 반기고 있었다.


바람에 밀려 해변으로 몰려가는 파도의 움직임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하멜 일행은 대정에 있는 제주목사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목사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나는 이호테우해변의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대접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전거 표류 팁


-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이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 것을 추천한다. 그러나 의무는 아니다. 사실 아무렇게나 돌아도 풍경은 좋다.


- 제주와 육지가 같다면 굳이 제주에 갈 이유가 없다. 차이를 기분좋게 받아들이면 만사가 편하다. 관광지는 제주가 아니더라도

가끔 요금이 비쌀 수도 있다. 굳이 제주에 대해서만 야박한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