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하동, 쌍계사를 향해.
오월은 하동.
최참판댁을 뒤로 하고 화개로 향했다. 왼쪽으로 남도대교를 건너면 매화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화개장터와 쌍계사 가는 길이다.
많이 알려진 십리 벚꽃길의 초입에서 잠시 쉬었다.
꽃이 핀 계절에 연인과 같이 걸어서 쌍계사까지 가면 반드시 결혼을 하게 된다는 그 유명한
길이다. 자동차가 드물었을 시절에는 몰라도 요즘 꽃피는 시절에는 차량과 인파가 넘쳐나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힘드니 신화를 크게 신뢰할 수는 없다.
꽃길의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입이 잘 다물어지지 않는 길인데,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늦가을의 어느날
별로 단풍으로서의 매력은 없는 낙엽 간간히 떨어지는 이 길도 되게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특별한 미래를 약속하고 싶다면 오히려 가을에 둘만이 손을 잡고 걸어볼 것을 권한다.
하동의 꽃길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매력이다. 인위적으로 조성을 하였건만 이상하게도
예전부터 늘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록의 냄새가 도회에서보다 더 선명해서 천천히 천천히 달렸다.
차 시배지가 있는 곳인 만큼 길 주변으로 소규모 차밭이 여러군데 있다.
차를 다시 마셔볼까 하는 마음이 불끈.
친구의 아버님도 아주 작은 차밭을 꾸려나가셨는데.
절집 입구 상점에서 허기를 달랜 후 자전거에 올라 쌍계사로 향했다.
사람이 참 한심한 것이 좋은 기억은 잘 까먹고 나쁜 기억에서는 어째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친구들과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는 천막아래에서 동동주에 도토리묵으로 반나절을 보내다가 끝내
토하고 말았던 일은 생생한데 정작 쌍계사 경내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찮은 용량의 대뇌엽.
걷는 사람들에게 방해를 하지 않으며 천천히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데, 백발의 앵글로 색슨 계열의 외국인 할아버지 할머니
관광객들이 브라보, 하고 박수를 친다.
정통 몽골리안의 품위를 살려 안녕하세요, 하고 답해주었다.
좀 안된 말이지만, 이제 앞으로는 너무 유명한 절집을 부러 찾지는 않을 것 같다. 다시 찾은 절집은 점점 시멘트가
들어서서 옛 정취를 찾기가 힘이 들어서이다.
쌍계사에서의 느낌이 이 정도이니 다른 곳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야박하게 몇천원의 입장료가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문화재 보호와 관리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입장료를
걷고 있다면 제대로 유지 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다.
속세의 편의를 구할 거면 산에 있을 이유가 없다.
불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안다. 솔직히 나라의 산하를 훼손하는 순위로 치자면 나는 절집도 만만찮은 순위
안에 든다고 생각한다. 불사를 일으킬 때는 신중하고도 신중하게 했으면 싶다.
일부 절집은 자동차는 출입은 허가하고 자전거의 출입을 막던데 책임있는 자리의 승려들이 차를 타고 다니니
차는 왔다갔다해도 되고 자전거는 안되는 것으로 나는 아직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그나마 쌍계사는 자전거를 막지 않아 그점은 고마웠다.
오랜만에 찾은 곳에서 구업을 쌓는 것 같아 안된 일이지만 꼭 한 번은 거론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쌍계사에서는 유독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 흔한 절집 특유의 패턴도 찾기 어려웠다. 그냥 시끌벅적
시장통 같은 느낌 뿐이었다.
화개로 다시 돌아나와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은 남았지만 조금 일찍 돌아와서 보고 싶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었다.
본방사수! 나는 가수다.
하동을 다시 찾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가늠조차 쉽게 안된다.
이제 이렇게 돌아가면 언제 다시 찾게 될지...
안녕...
오월의 하동.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