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풍경

오월은 하동, 평사리에서.

자전거여행자 2011. 5. 15. 20:58



오월은 하동.

 

시외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길을 나섰다.


학창시절 친구 형님께서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불편한 몸으로 은어를 잡아주시던 그 섬진강이 몹시 보고싶어서였다.



하동에서 구례 가는 일반국도 19번. 중간고사를 끝내고 겉멋에 친구 부모님 차를 빌려 폭우속을 달리던 그 길을 

어스름 달빛 아래 담배 꼬나물고 달리던 그 길을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 지난 오월에 자전거로 달렸다.


십리 벚꽃길에 꽃이 없어도 자전거로 달리는 동안 때때로 나는 낮게 신음했다.


길에는 찔레꽃 향기가 짙었다.




이리저리 경치 구경에 천천히 달렸건만 하동에서 구례방향으로 얼마 달리지 않아 악양뜰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문학의 빛나는 성과 소설 토지의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넉넉하고도 넉넉한 토지에 발을 내리고 자전거에서 떨어져 오래 서성거렸다.




길의 끝 뚝방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드라마 촬영장소였던 최참판댁은 넓은 들판을 보는 순간 잊혀지고 말았다.

산이 바람을 막았고 들은 백성을 먹였으며 강이 그 일을 거들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산하 구석에 숨어 핀 찔레처럼 친구 어머님은 아들 친구들에게 더 좋은 대접을 하지 못한 것이 섭섭하였던지

그 예전에 어느 날 정지와 해바라기 텃밭 사이에서만 서성이셨다.

 


오월의 햇살 아래 악양의 뚝방 위에서 겉멋을 부리며 바람을 지휘하였다.


지나간 날들을 떠올리며...

 

 

순간, 바람에 청보리와 밀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쏴쏴쏴 소리를 냈다.

바람이 지나간 흔적을 똑똑히 지켜보며 즐거워하였다.

 

 

 

유행이 지난 탓인지 이 좋은 곳에 지나가는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었다. 


차라리 그게 더 좋았다.

 

가끔 너무 좋은 대상은 독점하고 싶은 법이다.


 

푸른색과 파란색에 눈이 질리고 질릴 때쯤 나는 비로소 최참판댁을 향해 자전거의 핸들을 꺾었다.

시간은 남아났으며 나는 느리고도 느린 사람이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