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인생은 아름다워

자전거여행자 2011. 4. 22. 17:18



어느날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다.


- 어떤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면 행복할까요? 


나는 지체없이 이렇게 답했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 같은 사람을 만나세요. 아니면 당신이 상대방에게 귀도 같은 사람이 되던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가 어떻게 살아야 인생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영화는 슬프고도 아름답게 제시하고 있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주인공 귀도에게 여주인공 도라는 평탄한

인생을 버리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게 된다.



서로 물고 빨고 좋아 죽을 때의 남녀사이에서 벌어지는 삶의 패턴이야 다들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문제는 고난과 시련 

위기가 닥쳤을 때 얼마만큼 공고하게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가혹한 시절은 권력 없이도 행복한 이들을 유독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법이다.  

남편과 아이를 따라 수용소행을 택하는 도라를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일은 복되다.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그 지경이면 차라리 죽고 말지... 그렇게 살아서 뭐해...


그런데 자유가 억압당하고 신체가 구속되어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은 곧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누리려 애쓴다. 영화속의 귀도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양심수라는 이름으로 장기간 수형생활을 한 사람들이

기나긴 감옥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하는 그런 종류의 노력과 힘이 사람에게는 있다.


다만 고난속에서 작은 일상의 낙에 의지해 단순히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인생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귀도의 인생을 아름답다고 규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고 끝내 자신을 희생하여 그들을 살려냈다는 것에 있다. 


귀도가 단순히 수용소에서의 고통과 무료함을 잊기 위한 유희의 일종으로 게임을 했다면 그의 인생도 또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극심한 노동의 댓가로 얻은 거친 빵 한 조각을 아이의 입에 물리는, 아내가 좋아했던 음악을 애써 찾아 전달하는

귀도의 인생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다.


인.생.은.아.름.다.워.






천재감독은 그의 마지막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예의가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살아남지 못했으나 위대한 승자를 피흘리며 엎어진 모습으로 관객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복무한 권력은 영원한 패자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린 귀도는 승자로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아이의 대사처럼 그들이 끝내는 이긴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자리에 스스로를 대입해 본다. 만약 내가 저 상황이면 아이를 윽박지르지나

않았을까. 고통과 공포를 못견뎌 지레 딴생각을 실행에 옮기지나 않았을까. 아니지 나 같았으면 저런 상황에 빠지지 

않게 미리 대비를 했을거야. 등등...


언제나 결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귀도같이는 힘들겠다는 거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아름다운 인생은 어렵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편에는 최소한 서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를 삼가한다.


이건 운영자 사정이 그렇다는 것이고 청춘남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꼭 잡고 같이 볼 것을 권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영화를 보며 생각할 꺼리가 많은 작품이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부디 아름답기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