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자 2011. 3. 1. 18:52

 

 

3년 미뤄두었던 청소를 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롭고 깨끗했는데 이젠 날잡아 청소를 해도 그렇게 티가 나지

않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두었던 자질구레들이 결국 쓰레기봉투행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는 챙겨두지 않을 작정이다.

 

뭔가 주변에 축적되는 것에 익숙치가 않다. 성격 한 번 해괴하다고 스스도 인정하는 바고 썩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이제 어쩌겠나 싶다.

 

작년에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기타를 장만한 일이다. 자전거 가방에 넣어도 부피감이 없을 그런

관악기를 배워 친구 삼으려고 했으나 역시 나이가 먹어가니 보수적이 된다. 그냥 조금이라도 다룰 줄 아는 기타로

최종 낙점.

 

언제일지 모르지만 주변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할 때가 와도 기타와 자전거는 못버릴 것 같다.

해서 걱정이다. 자전거 타고 어떻게 기타를 짊어지고 갈 건지...

 

 

흐린 봄날에 별로 표나지 않는 청소를 마치고 같은 곡만 벌써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냥 무한반복 무한반복. 쇠줄에 시달린 손끝이 아려온다.

 

계절 탓인지 요즘 뜬금없는 상실감에 시달린다. 상실감의 정체를 알 길이 없어 괜히 배가 고프다.

 

그래! 먹자!

 

정체불명의 닭요리를 했다. 요리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겸연쩍고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는 레시피를

공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마트에 손질해 놓은 백숙용 중닭을 산다.

 

2. 냄비에 닭이 푹 잠길만큼 물을 붓고 통마늘 20개를 투하한다.

 

3. 끓어 넘치지 않게 불높이를 중간 정도로 조절하고 냄비를 올려놓은 후 약 40분 정도 딴짓을 한다.

 

4. 마늘이 흐물흐물해질 정도로 끓인 후 잘 익은 닭을 건져서 소금에 찍어먹는다.

 

 

 

술이 빠질 수는 없다. 혼자 먹는 술에 익숙하다. 질풍자전거점 운영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런 술상을

다른 사람이 측은하게 여길까봐 혼자 냠냠.

 

다른 이유를 꼽자면.

 

타인에게 위로가 되주지도 못할거면서 같이 술이나 먹어 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어서이기도 하고.

 

 

먹고 마시는 일에 열중하다보니 잠시나마 상실감 따위는 머리와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뒷정리를 하고 다시 기타를 잡으니 아까 그 곡을 또 무한반복하게 된다.

 

봄의 일상이 오늘과 같지 않기를...

 

힘을 내자! 힘!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