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자 2010. 9. 7. 01:43

 

 

신애는 밀양을 비밀스러운 햇볕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밀양(密陽)은 빽빽한

햇볕이 맞다. 밀양이 어떠한 곳인가를 묻는 신애에게 종찬은 밀양사람이 통상 읊을 수 있는

사설을 늘어놓는다.

 

-한나라당 도시고 경기도 안좋고 말씨는 부산말씨고 인구는 많이 줄었고...

 

신애가 말한 비밀스러운 햇볕은 무엇일까?

 

영화가 비밀스럽게 보여주고 있는데, 신애는 자신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햇볕을 아들에게 쏟아붇고 있었다. 인식하고 있지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쏟아붇고 있기도 하고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니 이는 필시 비밀스러운 것이다.

 

 

다방 종업원의 빤스(?) 형태를 몹시 궁금해 하며 농짓거리를 일삼는 종찬이지만 신애에게는

비밀스럽고도 빽빽한 햇볕을 내내 내리 퍼붓는데, 기실 종찬도 그의 어머니로부터

만만찮은 밀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 구조의 형태는 이창동 감독의 다른 영화를 유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차렸을 터.

  

 

비밀스럽고도 빽빽한 햇볕을 어떤 대상에게 내리 퍼부을 때의 행복한 종찬과 그 대상을

어처구니없게 잃었을 때의 비극적인 신애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복되다.

종교? 종교적인 것? 종교심에 관해 신애에 대한 종찬의 모습은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질풍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

영화를 보면서 용서라는 의미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용서?

 

상처를 준 어떤 대상에게 용서하느라 애를 쓰느니 차라리 다른 대상에게 비밀스럽고도

빽빽한 밀양을 퍼붇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는 찮은씨였다.

 

 

종찬은 마지막까지 신애를 위해 거울을 들었고, 스크린의 마지막은 몇가닥 비밀스러운 햇볕으로

마무리가 된다.

 

질풍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

둘의 미래가 빽빽한 햇볕 밀양(密陽)으로 가득하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