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장날
슬레이트 지붕에 함석판으로 덧댄 가게가 언양 장터에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아케이드 형식의 현대화된
시장이 아니라 한구석에서 강냉이 튀밥 터뜨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그런 장터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지 작은 규모의 중소도시 답지 않게 언양은 생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동리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가장 깨끗한 옷을 차려 입고 한곳으로 흘러왔습니다. 물건 구경도 구경이지만
실은 사람 구경에 어쩌다 안면있는 사람을 낚아 막걸리 타령으로 장날의 한나절을 보낼 심산이었습니다.
심하게 구석진 식당마다 막걸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잦았습니다.
재래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진열대가 넘쳐났습니다. 넘쳐난 것은 상품만이 아니라 커다란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뽕짝메들리도 있었습니다. 성악에는 벨칸토 창법이 있다면 뽕짝메들리의 여가수가 부르는 창법은
뽕짝창법이라고 달리 이름 붙일만 한 단어가 없을 것 갔습니다.
신중현의 록큰롤도 신승훈의 발라드도 메들리의 여가수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뽕짝뽕짝 뽕짜자 뽕짝 리듬에
실어버립니다. 가수는 물론 편곡자들도 천재가 아닐까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동시에 지갑도 엽니다.
백화점은 시간대에 따라 다른 음악을 내보낸다고 합니다.
언양 장터를 찾은 사람들은 빠르고 신나는 뽕짝에 맞춰 돈을 뽕짝뽕짝 뽕짜자 뽕짝 썼습니다.
장터 구경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장사는 별 재미가 없어도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이 쏠쏠한 상인.
질풍자전거점 운영자는 몸빼바지가 탐이 났습니다.
두툼한 버선도 탐이 났는데, 겨울에 신고 자면 수면양말 노릇을 톡톡히 해줄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원색의 패션은 이런 장터 패션이 최첨단에 있습니다.
장날, 물건을 진열하여 이곳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의무에 충실한 농기구가게 앞 좌판입니다.
너무 구석진 곳이라 정말이지 찾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구색을 갖춰 호미, 모종삽, 곡괭이 왜낫, 조선낫,
갈고리에 식칼과 톱.
아, 쥐덫도 있네요.
자전거 탈 때는 행동식 이외에 잘 먹지 않는 질풍자전거점 운영자이지만, 좋은 구경을 하고 그냥 돌아서기가
겸연쩍어서 밥집을 찾았습니다.
시장은 참기름 짜는 냄새가 가득하였습니다.
육고기로 유명한 언양이고 시장의 분위기에 취해서 음식에 대한 괜한 믿음이 생기더군요.
어제까지 한기가 들더니 계절을 뛰어넘은 듯 오늘은 초여름의 냄새가 났습니다. 건강한 햇빛에 달구어진 함석판에서
은근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낯선 시골 장터에 철퍼덕 주저앉아 자전거 여행자는 은혜로운 국밥을 먹었습니다.
잘 익은 고깃국을 우물거리다가 가게 바깥을 보았습니다.
빛의 걸음걸이가 느렸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