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양산 통도사를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문 매표소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출입금지, 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더군요.
자동차는 옆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는데...
가끔이지만, 요란한 굉음의 오토바이가 자전거 타는 찮은씨의 입장에서도 조금 과하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천년고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자전거의 출입이 불가하다니, 절집 문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혹시 오토바이 못지않게 자전거가 통도사에 피해를 준 일이 있지나 않은지...
일부 굉음을 내는 오토바이도 아니고 자동차처럼 주차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는데, 이곳저곳 절집을 자전거로 다녔던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통도사의 규칙이 몹시 낯설었습니다. 세걸음 이상은 안장에 앉아야 하는 찮은씨는 결국 통도사
구경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전거는 몹시 자유로운 도구인데, 자전거 타는 사람이 더 조심해서 더이상 제약이 생기지 않게끔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핸들을 꺾는 손이 상쾌하지만은 않더군요.
용맹정진하는 승려들이 자전거를 타게 되면 출입이 가능할려나...
부산 양산간 국도의 규모가 고속도로에 버금가니 예전 신작로는 이렇게 한적합니다. 일삼아 찾는 찮은씨의 전용도로인 셈이죠.
이런 길의 미덕은 가로수입니다. 속도 위주의 잘 닦이고 넓은 길은 가로수에게 공간을 할애하는 것에 야박합니다.
가로수 그늘을 따라 달리며 바람과 이파리들의 환대를 받는 일은 자전거 타는 사람만이 누리는 호사입니다.
통도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려 했던 애초의 계획이 틀어져버려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전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거대한 이팝나무가 자전거 여행자의 눈길을 잡아끕니다. 꽃이 열리면 그 모양이 쌀밥과 흡사하다 하여 이팝나무라 불렀다고
하기도 하고 꽃피는 절기가 입하(入夏)때여서 입하목(入夏木)인데, 발음을 빨리하면 이파목, 이팝목 하다가 이팝나무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흰쌀밥을 이밥이라고 하는 연유는 역시 왕조시대의 권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조선왕조 시대에 흰쌀밥을 먹으려면
아무래도 李씨 성을 가진 왕조와 연이 닿아 있어야 했습니다. 입신양명하여 관리가 되던지 아니면 왕족이던지.
자전거 타면서 잡생각하면 안되는데, 굶주리던 백성의 눈에 투영된 이팝나무의 꽃이 서사가 애절하나, 그래도
역시 이팝나무라고 불리게 된 유래는 입하목쪽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페달링 하면서 입으로는 입하목 이팝목 입하목 이팝목...
강원도 평창 봉평은 메밀꽃이 한창이라고 합니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내내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허생원의 눈에 메밀꽃 풍경이 포착되었다면 찮은씨는 신전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더란 말인가.
바람이 건들 분다. 콩이파리의 반대편이 희번득거렸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간 논에서는 건강한 메뚜기떼가 놀라 도망간다.
여름의 끝자락, 아직 호락호락하지 않은 태양이 귀밑으로 길게 땀을 흐르게 하는데 찮은씨와 자전거는 아직 갈길이
많이 남은 거였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