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질풍자전거점 운영자 찮은씨가 책을 보고 있다. 꼬부랑 글씨에 관심이 있어서 산 책이 아니라 사진을 보려고
구매했기 때문에 책을 보고 있다, 라는 표현은 정확한 것이다. 다리를 까딱거리며 흰것은 글씨고 나머지는 그림이고...
하고 있는데 자전거점 바깥이 어수선하다.
가끔 계가 깨져 아주머니들끼리의 악다구니가 소란의 전부인 조용한 골목에 큰 볼거리가 진행중이었다.
도회의 나무는 너무 잘 자라도 구박덩어리인 것이다. 웃자란 가지가 전선줄이라도 건드릴라치면 가차없이
제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동네에서 은행이 가장 많이 달리기로 유명한 질풍자전거점 앞의 은행나무.
철이 되면 비닐장갑을 낀 아주머니들이 은행을 까불고 가는 바람에 찮은씨는 늘 불쾌한 냄새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잘려나간 가지들을 보니 썩 개운한 마음은 아니다.
[사장님! 요즘 쓸만한 자전거는 가격이 얼마나 합니까?]
작업에 열중이던 아저씨가 큰소리로 묻는다. 찮은씨 그냥 생을 깐다. 찮은씨의 머리 위로 가지가 후두둑 떨어지고
아저씨의 조심하라는 말.
높은 곳에 올라가서 하는 위험한 작업은 역시 경험이 많은 연장자의 몫이고 차량을 통제하거나 가지들을 한곳으로
정리하는 허드렛일은 신참의 몫이다.
작업을 마친 아저씨들이 한곳에 모여 조촐한 참을 먹는데, 먼저 말을 건 한분이 자전거점으로 다가와
자전거에 대해 사설을 늘어놓는다.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 싸이클을 타고 부산서 갱주까지 어쩌고 저쩌고...]
찮은씨 그냥 싱긋 웃는다.
[아저씨, 제가 아저씨 사진이나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저기 한 번 서보세요.]
[엥? 꾸질한 상판떼기는 찍어서 뭐할라꼬?]
[요즘 제가 내셔널지오그래픽 느낌의 사진을 찍어 보려고 노력 중이거든요.]
[뭐시라? 무신지오그래삐꾸?]
[아, 아니 그냥 아저씨가 멋있어서 아저씨 모습을 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려고요.]
갑자기 아저씨가 매무새를 다듬으며 폼을 잡으신다.
[인타네또 그거 좋지... 이왕 찍는 거 잘 찍어보라꼬. 야, 이거 자전차빵 사장이 궁금한 자전거는 구경도 안시키주민서
자꾸 사진 찍자카네. 다 찍고 나서 자전거도 좀 구경시켜주라꼬. 내가 이래뵈도 왕년에 부산서 갱주까지
싸이클 타고 어쩌고 저쩌고...]
자자... 아저씨, 찍습니다. 인상 펴시고, 하나 둘.
찮은씨, 셋까지 가지 않고 둘에서 셔터를 누른다. 셋은 트릭이다. 통상 사진에 익숙치 않은 사람은 셋 할 때
눈을 감거나 인상이 경직되거나...
고된 노동에도 잃지 않은 일용노동자의 미소는 강철과도 같았다.
그의 입안과 왼손에는 어금니에 저작(咀嚼)되지 않은 내용물이 부실한 샌드위치가 감추어져 있는데, 그것의 기원은
길게 자란 은행나무의 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