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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4, 신새벽의 뱃길... 욕지도 가는 길

자전거 탄 풍경

by 자전거여행자 2012. 6. 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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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사람들은 모두 소매물도에 간다고 하였다. 무슨 물때라는 것이 있어서 소매물도의 등대섬에 가기 위해 시간에 맞춰서 다 같이

배를 탄다 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욕지도행 첫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사람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짐을 챙겨 

숙소 마당에 나서니 그새 안면이 익었다고 개는 짖지 않았다. 개는 이렇게 아침에 혼자 길을 나서는 사람의 움직임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자전거에 이것저것 매다는데 옆집에서 조선간장으로 맑은 장국을 끓이는 냄새가 숙소 담을 넘어왔다. 작은 어촌의 할머니는 이 아침에 

간장을 풀어 무슨 국을 끓이시려나.


열걸음 거리 지척에 있는 바다에서 아침 해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대기의 깨끗함은 옆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숨길 수 없을 

정도였다.


개에게 손을 흔든 후 삽작을 나서는데 유난히 나에게 친근함을 보이던 스탭이 부랴부랴 현관을 나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멈춰서 

작별의 인사를 나눌 수도 있었다. 그도 인사를 나누기 위해 나를 불러세울 수 있는 거리와 찰나였다. 나는 멈추지 않았고 그는 나를

불러세우지 않았다. 내가 고개만 돌렸어도 우리의 눈은 마주쳤을 것이다.


이건 겉멋인데 나는 이런 순간 멈추지 않는다. 인연의 끈이 끊어지려는 순간의 묘한 긴장을 즐긴다. 아이고 이제 가십니까? 다음에 또 

뵈어요. 따위의 입에 발린 레토릭, 하나마나한 후일의 기약 따위를 믿지 않는다. 그는 청춘의 한때를 이곳에서 소일할 것이고 나는 나의 

길을 자전거 타고 가다가 힘이 떨어지는 어느 지점에서 눌러앉을 것이다.



삼덕항에서 출발하는 욕지도행 첫배는 여섯시 사십오분에 있었다. 욕지는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도 갈 수 있다. 차이라면 삼덕에서 가는 배가

요금이 조금 싸고 시간도 덜 걸린다. 통영에서 출발하는 배는 연화도를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시간도 조금 더 걸리고 요금도 조금 더 받는다. 

그렇다고 큰 차이는 아니다.


출발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섬에서도 차는 다녀야 했고 전기는 필수였으며 사람이 사니 정화조도 비워야 했다. 육지에서는 흔한 일상이 왜 

섬에서는 특별하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해운회사 직원은 차를 세대나 못실었다고 아쉬워 하였다. 오일탱커와 전신주 실은 한전특장차 그리고 정화조 트럭을 태운 배가 신기하게도 

가쁜한 움직임을 하며 바다를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신새벽의 뱃길인데도 적잖은 사람들이 욕지행 영동골드호를 타고 있었다. 해가 희부윰한 바다 위로 솟아 있는 광경이 보기에 너무 좋아서

배의 좌편과 우편을 오가며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바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실 안에서 못다한 아침잠을 보충하기에 바빴다.

혼자 설레발을 치고 있자니 영판 광화문 네거리에 던져진 촌놈의 행색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 광경을 보지 않고 어떻게 잠을 청할 수 있지? 잠이야 집에 가서 자면 되지 않나?


취향에 따라 욕지도가 좋을 수도 연화도가 더 좋을 수도 아니 소매물도만 보면 섬 구경의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다가 고요

한 날 섬으로 가는 새벽배를 탈 일이다. 그 배위에서 펼쳐지는 남해바다의 아침을 보지 않고서는 섬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다.


섬에 내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착장 노점에서 해산물 한 접시에 소주 한잔 걸치고 와도 뱃길 한시간 반이 있었다면 크게 배삯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흥분도 잠시 시간이 어떻게 간지 몰랐는데 어느새 욕지도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깍아 놓은 곳에 군데군데 붉은 흙이 보인다.

토질이 역시 고구마 아니면 안되는 곳이었다. 욕지도에 내리니 모든 것이 한산도와 달랐다. 한산도는 그래도 제승당 때문인지 어딘가 정돈된

분위기였는데 욕지도는 생활의 냄새가 강했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뭔가 일을 벌였고 선착장의 파라솔 아래엔 해산물을 만지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바빴으며 섬 아이들의 방치된 자전거는 바다바람에 녹쓸어가고 있었다.


생활의 냄새에 강력한 방점은 제법 규모가 큰 수퍼마켓에 있었다. 남해의 끝자락 섬에도 수퍼는 있었고 그곳의 콜라는 육지의 가격과 같았다.


나는 연양갱과 물을 사들고 나와 섬의 시계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잣밤꽃 냄새가 코에 훅, 하고 파고들었다.







얼마가지 않아 자전거를 세웠는데 이유는 길가에 산딸기가 너무 먹음직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서도 야생의 산딸기를 본적이 있지만 이렇게 큰 건 오랜만이었다. 축담에 자전거 기대놓고 훌쩍 뛰어올라 야생정신(?)을 발휘하여

마구 따먹었다. 신기하게 야생딸기인데도 당도가 높았다. 뒷맛이 인스턴트 봉지 모카커피의 신맛을 닮아서 그 맛이 유별났다. 깨끗한 환경

에서 자란 아무도 돌보지 않은 산딸기로 아침을 대신한 거였다. 열매를 직접 따는 맛이 좋아서 덩달아 배도 불렀다.


괜히 몸과 마음에 힘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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